고기정 경제부장
당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김창록 산은 총재의 기자회견이었다. ‘너무 높은 값에 회사를 판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김 전 총재는 “매각 수익 중 3분의 1을 혁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응수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매각이 성사된 데 따른 자신감이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으로 생기는 차익도 비슷한 용도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김 전 총재가 말한 대우조선이 그로부터 13년 뒤 현대중공업에 팔리게 됐다. 상황이 다른 만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증여에 가깝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인정했듯 인도 방식도 매우 복잡하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꼭 한 가지 방식만 있으란 법은 없다. 문제는 원칙에 따른 매각이 있었느냐다. 산은은 1999년부터 10조 원 이상을 지원했던 대우조선을 20년 만에 민영화하면서 매각 대금을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다. 마침 대우조선은 2017년부터 순익을 내기 시작했다. 산은이 신설 통합법인에 주주로 있지만 사실상 대우조선에서 손을 뗀 거나 마찬가지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민영화의 원칙은 공적자금 회수와 기업의 미래가치 제고다. 산은은 이번 딜에서 자금 회수보다 조선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무게를 뒀다고 했지만 외환위기의 혼란에서 정부가 빅딜을 밀어붙였을 때조차 산업경쟁력 제고는 기본으로 깔린 전제였다. 새로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특혜니 책임 방기니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하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현재로선 현중과 대우조선 간 결합이 순조롭게 진행돼 압도적 1위 조선사로 재탄생하고, 시장 지배력을 높여 수익성을 확보하며, 신설 통합법인 주가가 올라 산은이 시장에서 지분을 팔고 나오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현중이 경영을 잘하는 것 이외에 각국의 반독점 심사 통과, 노조의 협조, 글로벌 조선업 호황 장기화, 중국 일본 경쟁사들의 부진 지속 등 외부 변수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번 민영화에서 산은이 보여준 금융공학 말고는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산은이 대우건설 매각, 한국GM 회생 방안에서 잇달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줘 더 불안하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