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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종전선언은 남북 별도 국가 인정 의미

입력 | 2019-02-16 18:52:00

분계선이 국경선 돼…평화통일까지는 험난한 여정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미 종전선언이 합의될 수 있다. [뉴시스]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proclamation of termination of the state of war)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종전선언을 하면 평화와 통일은 이뤄지는 것일까.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될 것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종전선언과 정전협정·평화협정은 어떤 관계인가. 

19세기까지 유럽 지배층 사회에는 ‘결투’가 있었다. 양쪽 주장이 대립하면 목숨을 건 결투를 통해 이긴 쪽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영국 의회의 여야 간 의석 사이가 비열하게 칼을 뽑은 쪽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대를 먼저 찌르는 것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였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정치도 이와 비슷해,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해지면 전쟁을 해 이기는 쪽을 따른다. 하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장기 소모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양측은 스스로의 결정이나 주변의 권유를 통해 잠시 싸움을 멈추는 휴전(休戰·cease fire)을 할 수 있다. 휴전은 문서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부 전선에서만 휴전할 수도 있다. 적대 행위를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하는 것이어서 다시 열전이 되기도 한다. 

정전(停戰·truce 혹은 armistice)은 전체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협상을 통해 분계선을 정하는 등의 문서화 작업을 한다. 1953년 7월 남북한은 2년여 동안의 협상을 통해 정전협정을 맺었다. 정전을 확고히 하고자 할 경우 제3국을 불러 정전체제를 감시하게 한다. 정전은 쉽게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지만, 장기화하면 피로감을 준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왼쪽)이 1월 18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휴전, 정전과 종전선언의 차이점

따라서 전쟁을 유발했던 갈등을 대화로 풀고 분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해 평화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때 맺는 것이 평화조약이다. 강화조약이나 기본조약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평화조약을 맺으면 양측은 국방비를 크게 줄이고 투자와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휴전에서 정전→평화체제로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 국제정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지키고자 유엔을 만들고 침략전쟁을 금지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유엔을 통해 ‘격퇴해야 한다’는 세계 여론을 만들었다. 전쟁을 사주한 소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불참했기에 어렵지 않게 안보리에서 격퇴 동의를 받아냈다. 미국은 유엔군을 만들어 한반도 전쟁에 개입했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승전을 위해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 측에 이양했다. 

그러나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해 정전을 하게 됐다. 정전협정은 그 전쟁에 임한 최고사령관이 한다. 유엔군사령관(마크 웨인 클라크 미 육군 대장)과 북한 인민군 사령관(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펑더화이·彭德懷)이 서명했다. 정전 관리를 위해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이 남북한에 주둔했다.

종전선언 후 다시 전쟁한 미국

6·25전쟁과 대비되는 것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이다. 1991년 미국은 유엔이 승인한 다국적군을 만들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했다. 쿠웨이트 해방이 목적인 전쟁이라 자국으로 도주한 이라크군을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이라크군도 전혀 반격하지 못했기에 자동으로 휴전이 이뤄졌다. 그해 2월 27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전쟁이 끝났다(The war is over)”고 선언했다. 

2001년 9·11테러를 당한 미국은 2003년 이라크가 WMD(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해 완승을 거뒀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생포하기 전이었지만 더는 싸울 적이 없었기에, 그해 5월 1일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주요 전투작전은 종료됐다(Major combat operations in Iraq have ended)”고 종전선언을 했다. 그리고 이라크와 복교했는데 종전선언만으로 평화관계를 만든 경우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1991년 종전선언 후에도 미국은 1993년 6월 이라크를 공습했고, 1996년과 1998년에는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등 이라크와 갈등을 거듭했다. 2003년 선언도 그 후 10여 년 동안 이라크 안정화 작전으로 이어졌으니 역시 완전한 승전선언이 되지 못했다. 미국의 종전선언이 반드시 평화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좀 달랐다. 1945년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은 독일의 항복을 받았지만, 다른 연합국 간 갈등으로 독일과 평화협상을 맺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1946년 12월 31일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적대적 행위를 이날 정오를 기해 종료한다. 이 선언에 따라 전쟁 및 긴급 사태에 관한 미국의 55개 법률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선언이 전쟁 상태를 종료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붙였기에,이는 ‘적대행위의 종료선언’으로 이해되고 있다. 

미국은 독일 편에 섰던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를 상대로 평화조약을 맺었고 이 조약이 발효된 1947년 9월 15일 세 나라와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했다. 독일과는 10월 24일 평화조약 없이 종전선언만 한 뒤 평화관계로 들어섰다. 

평화협정이 없어도 평화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례다. 영국, 프랑스, 소련도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지 않고 외교관계를 수복하면서 평화관계에 접어들었다. 영국은 종전 6년이 지난 1951년 7월 관보(Official Gazette)를 통해 독일과 전쟁을 끝낸다고 선언했다. 소련도 1956년 독일과 종전한다는 합의를 하고 복교했다. 

연합국은 일본을 상대로 평화조약을 맺을 때도 갈등을 빚었다. 소련은 물론, 중국(대만)까지 미국이 주도한 대일(對日) 평화협상에 반대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둘을 제외한 다른 연합국과 대일전을 끝내는 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했다. 그해 중국(대만)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별도로 ‘일화(日華)화평조약’을 맺어 일본과 평화관계로 들어갔다.

북·미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유엔군사령부는 제일 먼저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이뤄지면 한미연합사령부도 해체될 수 있다. [뉴시스]


북·미 종전선언은 한반도 영구분단 전제

소련과 일본은 1956년 종전 발표만 하고 국교를 수복했다. 1971년 대만을 밀어내고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 된 중국도 1972년 일본과 평화관계로 들어간다는 종전합의만 하고 복교했다. 공산국가들도 종전선언(또는 종전합의)만으로도 평화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 

미국과 소련, 중국의 종전선언에는 반드시 승전이 숨어 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 일본과 종전선언만으로 복교한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이 두 나라와 전쟁을 끝낸 날 대대적인 전승절 행사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도 전승절을 정해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다. 

따라서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과 미국은 모두 승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평화협정과 같은 의미로 사용해온 것을 근거 삼아 미국 측에 ‘대북제재법을 풀어달라’ ‘유엔 안보리가 만든 대북제재안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종전선언이 남북한 관계에도 훈풍을 가져올 것이라 보고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이를 지지한다고 합의해줬다.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을 하면 남북한은 완전히 별개의 국가가 돼야 한다. 남북한은 1991년 기본합의서를 만들고 유엔에 동시 가입했는데, 이는 서로 별도의 국가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과 북한 조선노동당 강령은 상대를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적시해놓고 있다. 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맺어 완전히 별개 국가로 갔다 1990년 동독이 서독 연방에 가입하는 식으로 평화통일을 이뤘다. 남북한도 별개 나라로 갔다 양측 경제 사정의 변화와 국제정치의 변동을 통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좌우를 불문하고 북방정책을 펼쳤던 노태우 정부 이래 여러 정부가 검토하고 추진하던 방안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당장은 영구분단과 통일 포기를 전제로 하기에 어떤 정권도 솔직히 설명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정책은 위헌 시비를 일으킨다. 동서독이 기본조약을 맺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동독은 영토조항을 바꾸는 개헌을 했고, 서독은 헌법(기본법)에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동독에 대한 통치를 유예한다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기에 위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한 헌법과 북한 조선노동당 강령을 고쳐야 독일식 공존을 지향해볼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연방제 통일안 및 개헌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제거를 목표로 삼고 있으니,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한반도가 한국 주도로 통일되는 것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문재인 정부가 북·미 종전선언을 지지하니 미국은 한반도 영구분단과 북한 비핵화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북·미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영구분단을 전제로 한다. 이로써 분계선이 국경선으로 바뀌면 남북은 자유 왕래를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북한이 거부하거나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아 다시 긴장이 고조되면 물거품이 돼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북·미 종전선언이 ‘혹시나’를 ‘역시나’로 만들어놓는 반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남북한 영구분단을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반도 평화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은 물론이고, 종전선언도 하루아침에 부정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 정부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 실력과 맷집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6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