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집을 출간한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 ‘길작은도서관’의 할머니들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시인 할매’. 할머니들이 마을 담벼락에 시화를 그리고 있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출발은 2016년 발간한 ‘시집살이 詩집살이’였다. 이 시집에 수록된 124편의 시는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의 ‘길작은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운 ‘할매’들의 작품. 시집을 보고 짠한 감동을 느낀 이종은 감독이 마을을 직접 찾아갔다. 할머니들은 “다 늙은 사람을 뭐 하러 찍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제작진은 마을에 떡을 돌리며 간곡하게 협조를 구해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시인 할매’에서 시 쓰는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양양금 할머니의 시는 “동생들만 키우니라고(키우느라) 학교를 안갔다”, “글자도 모른 것이 까분다해 기가 팍 죽었다”거나 “천국에 있는 난편(남편)에게 나 잘살고 있다고 쓰고 싶다”고 한다. “손지들(손자들) 사랑한다”고 한 ‘가점댁’ 도귀례 할머니의 한 줄 시도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나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니기들은(너희들은) 고생하지 말아라”는 박희순 할머니의 시를 본 딸은 “엄마 너무 예쁘게 시를 적었다”며 눈물을 훔친다. 삐뚤삐뚤한 글씨를 통해 평소 표현하지 못하던 가족에 대한 마음을 치장 없이 진솔하게 꺼내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무공해 힐링’을 표방한 영화로, 할머니들이 직접 쓴 시가 화면에 오버랩되고, 각각의 사연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특별한 연출이나 서사가 없어 다소 투박하지만 아련하고 푸근하다. 음악이나 드론 촬영 장면이 길다는 지적에 이 감독은 “작업을 하며 과도하게(?) 영화에 몰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