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염정아(47)는 요즘 꿈을 꾸는 것 같다. JTBC 드라마 ‘SKY캐슬’로 데뷔 26년 만에 10, 20대 팬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이 관객 529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SKY캐슬’은 마지막 제20회가 시청률 23.8%(닐슨코리아 전국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좋은 작품을 만나길 손꼽아 기다렸는데, “사랑까지 받아 행복하다”면서 “신기하게 머리를 짧게 자른 뒤 계속 잘된다”며 미소지었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나를 모르던 젊은 친구들이 ‘SKY캐슬’을 통해 알게 되지 않았느냐. 종방연 때 편지 주고 나만 찍으러 오는 친구들이 있더라. 어렸을 때도 이런 경험을 못해봤다. 그래도 추운데 종방연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마음이 불편하더라. 대학생이라고 하기에 ‘공부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공항에도 팬들이 나와서 배웅해준다. 다들 어떻게 스케줄을 알고 오는지 모르겠다.”
염정아는 “지금도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남의 일 같다”면서 “나한테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연기자 생활을 오래했지만 이렇게 시청률이 많이 나온 적은 처음이다.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종방 후 발리에 화보 촬영하러 갔더니 현지 팬들이 새벽인데도 공항에 나와 있더라. 한국말로 ‘SKY캐슬’ ‘예서 엄마’라고 해서 놀랐다”며 “내 연기를 보고 좋아해주는 분들 아니냐.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염정아가 연기한 ‘한서진’은 겉보기에는 모든 게 완벽한 여자다. 두 딸 ‘예서’(김혜윤)와 ‘예빈’(이지원)의 교육과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인 남편 ‘강준상’(정준호)의 내조도 척척 해낸다. 상위 0.1%의 명문가 사모님들이 모인 캐슬 안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염정아는 ‘핏줄까지 연기한다’는 극찬을 들을 만큼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진짜 핏줄까지 연기하는 줄은 몰랐다”면서도 메인 연출자인 조현탁 PD에게 공을 돌렸다. 조 PD와는 ‘마녀보감’(2016)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조 PD는 “염정아는 예술적 동반자”라면서 애정을 드러냈다. 염정아 역시 조 PD에게 ‘SKY캐슬’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안 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며 “‘감독님만 믿고 가자’고 마음먹었다”는 이심전심이다.
“처음에는 앵글이 낯설었다”며 “오재호 촬영 감독님이 카메라를 계속 들고 찍어서 ‘괜찮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연기한 걸 100%, 아니 200%를 전달하더라. 연기자 혼자 잘한 게 아니라 카메라, 조명, 편집까지 스태프들의 노력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아갈 미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서진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척 했지만, 분노하면 ‘아갈머리 확 찢어 버릴라’는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신분을 바꾸기 전인 ‘곽미향’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유행어가 될 줄은 예상 못했지만, 극본을 보고 “연기할 생각을 하니 신났다”고 돌아봤다.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묻자 “곽미향? 아님 한서진?”이라면서 “둘 다 나와 많이 닮지 않았다. 난 야망이 있거나 계산적이고 주도면밀하지 못하다. 허점이 많고, 곽미향처럼 똑똑하지도 않다”며 웃었다.
“오히려 힘들어서 더 재미있었다. 한서진은 여러 인물들과 부딪히면서 대립각에 섰다. 누군가와 진심도 나누지 않았다. 후반부까지 중심을 잡고 가야 해 인물들과 관계 변화에 집중했다. 사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를 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극본을 꼼꼼히 보면서 대사만 착실하게 외우고, 현장에서 상대방을 보고 감정을 얻는다. 바로 앞 신에서 각 인물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메모해서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각 인물과 관계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연기하지 않으면 맥이 끊기니까.”염정아는 2006년 정형외과 의사 허일(48)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왜곡된 모성애를 지닌 한서진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다. 한서진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지 않느냐. 그걸 아는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한 가정이라도 살려보자’는 유현미 작가의 진심에 공감했다.
그러나 염정아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딱 달라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열혈 엄마’였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고, 엄마로서 잘하는 건 줄 알았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커 가는구나’ 싶더란다.
“우리 아이들도 똑같이 학원 다니고 학습지도 한다. 많이 시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더 해야 하니까 안쓰러운 부분도 있다”며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고등학교 내신 관리가 중요하고 봉사활동이 점수에 들어 가는지도 몰랐다. 수능은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대학 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을 하고 더 두려움이 생겼다”고 전했다.
가족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아이들도 ‘SKY캐슬’ 열성 시청자다. “1, 2회 빼고 다 봤다”며 “엄마가 나와서 더 관심 갖고 재미있어 했지만, 딱히 나를 ‘배우’나 ‘연예인’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옆에서 친구들이 보고 많이 얘기하니까 신기해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남편도 ‘재미있다‘고 응원해줬다. 오늘도 나오는데 자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 어떻게 얘기를 안 하느냐. 지금 남편이 많은 관심을 받아서 너무 부끄러워하고 불편해 한다. 정준호씨와 닮았다고? 하하. 안경 쓰고 콧수염을 길러서 닮아 보이는 것 같다. 강준상처럼 정형외과 의사지만 전혀 다르다. 마마보이이거나 우유부단하지 않다. 야망 있는 스타일도 아니다. 내가 연기하는데 방해될 까봐 병원 얘기도 안 하더라.”
“난 취미도, 특기도 없다. 그냥 부지런만 하다. 집에서도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엄마와 연기자 사이에서 균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드라마 ‘로열패밀리’(2011)도 그렇고, 센 캐릭터로 많이 각인 됐지만 섭섭하거나 아쉽지는 않다. 망가지고 싶지 않느냐고? 하하하. 나 웃긴 거 정말 좋아한다. 그런 작품을 꼭 만나고 싶다. 앞으로도 부담감 가지지 않고 하던 대로 할 거다. 우선 지난해 촬영을 마친 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으로 관객들을 만날 것 같다. 차기작도 빨리 정할거다. 재미있는 연기 또 해야 되니까.”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