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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연수원-로스쿨 ‘기수’ 다투다 투표까지 한 법조계의 낡은 문화

입력 | 2019-02-02 00:00:00


법원이 사법연수원 출신 판사와 변호사시험 출신 판사의 기수 서열을 정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시험 1회 출신 판사의 기수를 변호사 자격 취득 시점 기준으로 연수원 41기로 볼지, 재판연구원 임용 시점 기준으로 연수원 42기로 볼지가 쟁점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문제를 두고 소속 판사 300여 명이 이틀간 온라인 투표까지 벌인 끝에 어제 ‘변시 1회를 연수원 41.5기로 한다’는 절충안을 채택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변시 1회를 41기, 검찰은 41.5기로 대우하고 있다.

판사들이 기수 문제에 민감한 것은 기수가 어떤 재판부에 배정될지, 단독재판장이나 합의부장, 법원장을 누가 먼저 할 것인지 등 인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연수원-로스쿨 출신 간의 다툼은 기수에 따라 편안하게 다음 자리로 차례차례 옮겨가고 올라가는 낡고 특권적인 관행이 빚은 치졸한 ‘밥그릇 싸움’에 다름 아닌 것이다.

기수는 위계질서를 따지던 연공서열 시대의 관행에 불과한데, 이를 인사 기준으로 삼는 조직은 우리 사회에서 법원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민간에서는 공정한 경쟁 룰을 바탕으로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임직원 간 호칭부터 복장, 회의 문화를 파괴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통적 위계질서에 대한 거부감은 더 커져 최근 대학가에서도 학번과 나이와 무관하게 ‘○○ 씨’로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행정부에서도 연공서열과 직급 체계를 없애고 성과와 역량 중심의 인사를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사법부의 새 피가 되어야 할 젊은 판사들이 기수를 놓고 다투는 모습에서 사법부의 미래가 걱정된다.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일에서 드러낸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보면 우리 사회 갈등의 최종 심판자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정한 인사는 그 사람의 성과와 적성, 희망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지 기수에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법조계도 기수 서열이라는 낡고 기득권적인 틀을 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