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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버드 박스 챌린지’ 보고 떠오른 것

입력 | 2019-01-17 03:00:00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맑음. 노예제.
#303 Trent Reznor & Atticus Ross ‘Sleep Deprivation’(2019년)




영화 ‘버드 박스’의 사운드트랙 앨범 표지.

눈가리개가 전염병처럼 번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 농구를 하고 쇼핑몰에 간다. 잔디 깎는 기계나 자동차를 운전한다. ‘버드 박스 챌린지’ 열풍이다.

‘버드 박스’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45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영화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지구인들 눈에 악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육안으로 본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한다. 거리는 온통 자살자들의 아비규환이다. 생존자들은 스스로를 지키려 눈가리개를 한 채 세상 밖으로 나간다.

영화 속에서 세계를 휩쓰는 악령, 절대 눈으로 봐서는 안 되는 괴이한 존재. 그것이 혹시 현대의 어떤 병폐를 은유한 것일까. 그렇다면 SNS와 거기 넘쳐나는 과잉 정보, 거짓 뉴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영화에서 악령이 다가올 때면 가장 먼저 법석을 떠는 게 새다. 트위터의 상징물도 새다. 트위터는 트윗(tweet·짹짹)이란 단어에서 왔다.

SNS는 무한연결을 지향한다. 가족과 친구 관계, 취향과 동선을 자발적으로 세계 앞에 공유하도록 개인을 독려한다. 눈가리개를 한 무한공유가 괴물이 돼 개인의 삶을 처참히 파괴하는 것을 본 적 있다.

백주의 거리가 자살로 물들어가는 ‘버드 박스’의 전반부를 보며 미국 록 밴드 나인인치네일스의 뮤직비디오 ‘We‘re in This Together’가 떠올랐다. 뮤직비디오에서 밴드 리더 트렌트 레즈너는 군중에 영문도 모른 채 섞여든다. 똑같은 옷을 입고 뭔가를 피해 한곳으로만 달려가는 무리. 그들과 뒤엉켜 미지의 존재로부터 탈주한다. 결론은 허무하다. 군중은 사실 유령 같은 천 조각에 불과했다.

레즈너는 ‘인더스트리얼 록’ 장르의 대표 음악가다. 산업화의 폐해와 인간 고립 문제를 산업적 노이즈로 표현하는 역설. 지미 헨드릭스(1942∼1970)는 1967년 미국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전기기타에 불을 붙였고, 네일스는 1994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Happiness in Slavery’(QR코드)를 부르며 신시사이저를 박살냈다.

레즈너는 영화 ‘소셜네트워크’로 아카데미 음악상도 받았다. ‘버드 박스’의 음악도 담당했다. 신경을 거스르는 노이즈와 분절된 전자음…. 레즈너가 영화에 수놓은 소리 파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닮았다. 언제든 악령으로 변할 준비가 돼 있는 무한한 노이즈의 세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