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구로구 원목 소품 브랜드 ‘메인오브제’ 공방에서 대표 김태수 씨(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수화통역사, 그리고 성균관대 학생들이 제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6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원목 공방. 이달 출시를 앞둔 원목 모니터 받침대의 가격을 놓고 김태수 씨(47)와 대학생 4명이 머리를 맞댔다. 다만 여느 회사의 회의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제품 포장하는 데 ‘뽁뽁이’는 몇 미터나 들어갈까요?”
“다섯 번 정도는 감아야 할 것 같은데….”
김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뇌수막염을 앓고는 혼수상태에서 사흘 만에 깨어났다. 목숨을 건졌지만 대신 청력을 잃었다. 동네 골목대장이던 그의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친구 관계 유지도, 공부도 벅찼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까지 일반 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제가 특별한 의지가 있지는 않았어요. 부모님께서 ‘좀 고생하더라도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다녔을 뿐이죠.”
사춘기 시절에는 마음고생도 했지만 일반 학교를 다닌 덕에 사람과 어울리고 새로 배우는 데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두려워’했다. 5개 대학에서 입시 면접을 봤지만 “청각장애가 있으면 수업을 듣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러시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귀국해서는 대학원에서 국제수화통역을 정공했다. 이후 나사렛대 등에 출강했지만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던 김 씨는 2007년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기) 유행이 일었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스스로 만든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으로 공방에서 일주일에 2번, 열 달 동안 목공을 배웠다. 서울농아인협회 구로지부에서 활동하며 취미 삼아 목공품 제작을 꾸준히 했다.
“고용되지 못하는 것이 속상했는데 사업주가 돼 스스로를 직접 고용할 수 있다니, 멋졌습니다.”
김 씨와 학생들, 수어통역 재능기부자 정 씨가 의기투합해 반 년 넘는 회의 끝에 그해 9월 원목 인테리어 및 사무용 소품을 제작하는 메인오브제를 만들었다. 매출이라야 미미하지만 그래도 포기는 없다.
마케팅 담당 신동주(23) 씨는 “지난달 궁리 끝에 편백나무 수면등에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새겨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매출이 140만 원가량 됐다”며 “적어 보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큰 돈”이라고 웃었다. 박선우 씨(23)는 “구매자들이 ‘장애와 상관없이 당당히 경제활동을 하는 덕분에 품질 좋은 제품을 샀다’는 응원 리뷰를 홈페이지에 남길 때 힘이 난다”고 말했다.
메인오브제는 수익 사업을 넘어 다른 청각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뛰고 있다. 김 대표가 농(聾)학교에서 하는 목공 수업에 반응이 좋은 데 착안해 청각장애인들이 목공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김 씨는 “문재인 대통령 구두를 제작했다는, 청각장애인을 직원으로 둔 업체가 도산할 뻔했다가 언론에 알려지며 10억 원 가까이 성금을 받아 살아났다고 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도 장애인이 어디서든 교육과 사업 자문을 받아 자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