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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서 촉발된 ‘욱일기’ 논란… ‘광선문양’ 놓고 의견 충돌

입력 | 2018-12-19 12:09:00

로버트 케네디 공립학교에 설치된 ‘광선문양’ 벽화 논란
한인사회 ‘욱일기’ 주장에 작가사회 “아무 관련 없다” 반박
LA 교육당국 “추가 논의 필요하다” 한발 빼



‘욱일기’ 논란을 촉발시킨 로버트 케네디 공립학교의 ‘코코아넛 그로브’ 벽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학교 벽에 그려진 대형 벽화가 ‘욱일기’ 논란에 휘말리며 철거를 주장하는 한인사회와 이에 반대하는 작가 측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 학교에 기부 형식으로 그려진 대형 벽화에 포함된 태양광선의 형상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연상시켜 철거해야 한다는 한인사회 측 주장에 그림이 욱일기와는 아무 관련 없으며 지나친 검열이라는 작가 측 반박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초 철거 결정을 내렸던 시 교육당국은 추가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그림은 로버트 F 케네디 공립학교 체육관 벽에 2016년 그려진 벽화다. 이 학교가 2010년 세워지기 전 학교 부지는 유명 나이트클럽인 ‘코코아넛 그로브’의 차지였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화가 보 스탠튼은 ‘코코아넛 그로브’를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였던 에바 가드너의 얼굴과 야자나무 등을 벽화에 그려 넣었다. ‘코코아넛 그로브’는 1968년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가 그해 암살당한 앰배서더호텔과 함께 운영되던 시설로 벽화는 지금은 철거된 이 호텔과 케네디를 기념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문제는 스탠튼이 벽화 중앙에 그려진 에바 가드너의 얼굴에서부터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태양광선 문양을 집어넣은 데서 시작됐다. 한인사회가 주도하는 지역시민단체 윌셔커뮤니티연합은 이 벽화를 ‘욱일기 벽화’로 부르며 지난달부터 ‘욱일기와 스와스티카(나치 상징) 등 혐오 상징에 함께 맞서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작가가 (혐오 상징을 사용할) 의도를 갖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벽화는 일본의 침략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묘사한다”고 밝혔다.

이달 초 LA시 교육당국은 논란이 된 벽화를 겨울방학 기간에 철거하겠다고 결정했으나 즉각 반발에 부딪혔다. 스탠튼은 11일 LA타임스에 “(태양광선 묘사는) 애리조나 주 깃발을 포함해 흔하게 사용되는 디자인 옵션 중 하나다”라며 “지역사회와 대화를 나누고 우려를 불식시킬 기회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철거 결정이 내려져)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묘사한 ‘희망(Hope)’ 포스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셰퍼드 페이리는 스탠튼의 벽화가 철거되면 자신이 학교에 그린 로버트 케네디의 초상화 벽화를 자발적으로 지우겠다고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페이리는 “(일본의 침략은) 끔찍한 역사이지만 벽화는 (욱일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이자 변호사인 멕스웰 케네디까지 나서 작가들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나서자 교육당국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케네디는 LA타임스에 전달한 성명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상징들도 존재하지만, 미국에서 빛줄기는 희망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한인사회와 스탠튼은 지난주 직접 만나 벽화 논란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 가능성을 높였다.

LA타임스는 이 논란을 11일자 1면에 크게 다루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 행보를 상세히 다루는 한편 문제의 벽화가 혐오 상징에 해당하는 지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 금기시되는 노예제도를 옹호한 ‘남부연합’의 깃발 사례와 이번 벽화 논란이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문은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가혹한 강제 노동시설을 운영하고 성노예를 두기도 했다”며 “한국인 운동가들은 벽화가 (일본의) 과거 악행을 연상시키는 깃발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