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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날림 서울’

입력 | 2018-12-15 03:00:00


프랑스 파리의 하수구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등장한 배경이자 ‘낭만의 도시’에 숨겨진 속살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1867년 실제 하수도 구간에 설립된 ‘하수도 박물관’은 당당히 입장료를 받는 관광 명소로도 꼽힌다. 길이 2400km의 지하세계에 설치된 하수도망(網)은 빈틈없는 관리를 받은 덕분에 오늘도 건재하다.

▷도시 설계와 정비에 있어 번지르르한 겉모습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어떤가. 1991년 강남 한복판에 준공된 15층 빌딩이 붕괴 위험의 진단을 받고 13일 0시를 기해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12일 목동에서는 33년 된 온수관이 터지는 바람에 주민들이 17시간이나 온수, 난방이 끊겨 매서운 추위 속에 고통을 겪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안산, 부산에서도 같은 사고가 잇따라 국민들은 불안하다. 30년 안팎 건물과 온수관이 이런 지경에 처한 것을 보면서 부실공사 의혹과 맞물려, 이후 얼마나 관리감독이 허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개발연대의 후유증은 질긴 듯하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고도성장은 세계에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이를 바탕으로 2번의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후발 주자의 속도전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대가는 혹독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데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1990년대 들어 완공 15년 만에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는 완공 6년 만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부끄러운 사고로 이어졌다.

▷‘속도’를 미덕으로 받들고 ‘과정’을 경시한 개발시대의 ‘정신적 장애’가 21세기로 이어지는 것인가. 노후화된 건물과 시설 등 ‘날림 서울’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기 위한 총체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만의 문제도 아니다. 88 올림픽 전후로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내걸고 분당 일산 등 1기 수도권 신도시 조성에 나섰다. 그때 대량 공급된 아파트들이 어느새 준공 30년을 앞두고 있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이제 우리도 내실을 다지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