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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정성은]놓아야 비로소 얻는 것들

입력 | 2018-12-05 03:00:00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카메라에 담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영상을 찍어주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약속을 잡고, 반나절 찍어 밤새 편집했다. 만들고 보니 꽤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돌려 보았다. 문득 이런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돈을 벌수록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업물이 줄어드는 느낌이야.” 영화동아리 친구이자 동종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예전부터 우리는 종종 서로의 작업물을 공유했다. “공모전 나가서 이런 거 만들었어∼. 한 번 봐.” “시나리오 썼는데 피드백 좀 해줄래?” 하지만 각자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그런 연락은 줄어들었다. “요즘 어떤 작업해?” “아… 그냥… 뭐 그런 게 있어∼.”

돈을 받고 일한다는 건 취미로 혼자 작업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지켜야 할 약속도 설득해야 할 일도 많았다. 완성도보단 마감을 지키는 게 중요했고, 고집이 너무 세도 없어도 문제였다. 노동력에 비해 돈을 적게 줄까 몸을 사리면서도 내가 받는 돈이 누구에게서 나오는 건지 늘 생각해야 했다.

동시에 무엇보다 달콤했다. 하숙집에서 원룸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고, 스트레스 받을 때면 도쿄행 항공권 정도는 끊을 수 있는 경제력도 생겼다. 무엇보다 늘 ‘저 좀 뽑아주세요’ 하며 자기소개서를 쓰던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고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됐다. 일을 준다는 사실에 감사해 들어오는 일은 묻지도 않고 모두 하겠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가고 싶던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동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면접에 응했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에서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곳에 와서 만들고 싶은 게 뭐죠?” ‘네?… 아… 그냥… 시키는 걸 하고 싶었는데….’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솔직한 심정은 그것이었다. 늘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1년 동안 주어진 일만 하니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바쁜 게 최고인 줄 알았다. 프리랜서라 더 그랬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건 바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한다고 커리어가 쌓이는 건 아니었다. 눈앞의 이익보다 숲을 봤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기에 얻은 새로운 기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은 마음은 휴식에서 나오는데, 그런 심심함 없이 바쁜 느낌에 취해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던 날들. 반나절 찍고, 밤새 편집해, 다음 날 보여주며 서로의 일상을 기록하던 시절.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냥 한 번 해봤을 때. 그래서 12월엔 돈 받고 하는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돈 안 받고도 한 번 카메라를 들어보려고 한다. “영화를 만들려면 젊고 무식해야 한다. 너무 많이 알면 영화 만들기는 불가능해진다”는 고다르의 말처럼, 추운 날들이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몸을 가볍게 하고 싶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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