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서 10월 19일(현지 시간) 한 어린이가 도로에서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곳처럼 유럽 여러 국가에는 실제 도로와 비슷한 환경에서 어린이가 교통안전 규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직접 자전거 타며 배우는 교통안전
10월 19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 갖춰진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시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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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시(市) 자전거팀의 마르틴 블룸 매니저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교통 신호체계를 잘 알고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빈의 보도나 차도 대부분에는 자전거를 위한 전용차로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간혹 차도를 이용할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에게도 자동차의 신호체계를 꼼꼼히 가르치는 것이다.
● 안전도 ‘최신’을 가르치는 네덜란드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마케팅과 교육을 맡고 있는 로프 솜포르스트 씨가 10월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VVN에서 네덜란드 어린이를 위한 교통안전 교육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0월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마케팅과 교육을 맡고 있는 로프 솜포르스트 씨가 ‘가장 대표적인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 있게 내놓은 답이다. 네덜란드는 내년 7월 1일 자전거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다.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전화를 쓰는 ‘자전거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족’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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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운전과 휴대전화 사용 중 하나만 하라는 ‘모노(MONO) 캠페인’이다. 과거 VVN은 운전자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자전거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존감이 강한 네덜란드 국민에게 외면을 받았다. 반면 ‘운전할 때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게 올바른 일’이란 점을 강조하며 자존감을 높인 모노 캠페인은 성공을 거뒀다.
네덜란드는 전체 인구(약 1700만 명)보다 많은 약 2200만 대의 자전거가 있는 나라다. 오스트리아처럼 자전거 교육을 어릴 때 시작한다. 정부는 자전거 안전교육 시험을 통과한 어린이에게 ‘자전거 안전 학위(디플로마)’를 제공한다. 1931년 시작한 네덜란드의 오랜 전통이다. 어린이들은 매년 4, 5, 6월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른다. 교통 규칙이나 안전한 이용 습관, 교통 수신호 등을 평가 받는다. 시험은 의무가 아니지만 네덜란드 초등학생의 92%가 학위를 받고 중학교로 진학한다.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교통안전의 한 축을 책임진다는 점을 몸으로 익힌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자전거 사용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관련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 법규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어린 나이부터 철저한 교육을 통해 교통안전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한 유럽 국가들의 세심한 사례들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리히·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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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음주-과속운전 막는 강력한 정책 시급”▼
국제교통포럼(ITF)에서 교통안전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베로니크 페이펠 수석연구원이 10월 9일(현지 시간)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의 교통안전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10월 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만난 국제교통포럼(ITF)의 베로니크 페이펠 수석연구원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일 때 가장 참고해야 할 국가 중 하나가 스웨덴”이라며 “도로 설계부터 교통사고 원인 분석까지 교통안전과 관련된 모든 정책에 ‘안전’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도로교통사고센터(IRTAD)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교통안전 분야의 세계적 학자다.
스웨덴의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5명으로 2년 전보다 0.2명 더 줄었다. 지난해 8.1명이 숨진 한국의 30% 수준이다. 비결은 ‘비전제로(0)’ 정책이다. 1997년 스웨덴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0으로 만들기 위해 내건 정책 방향이다. 도로를 설계할 때 중앙분리대 설치를 의무화하고, 과속을 막기 위해 수시로 차로 수를 1, 2개씩 바꿔 운전자가 긴장하도록 했다.
특히 ‘음주운전과의 전쟁’에 집중했다. 스웨덴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 원인 중 절반 이상이 음주운전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음주운전으로 한 번이라도 적발된 사람의 차량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달도록 했다. 시동을 걸기 전 음주 여부를 확인하도록 한 장치다. 설치비용은 운전자가 부담한다. 국민도 호응하며 2007년 337명이었던 스웨덴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지난해 135명로 줄었다. 페이펠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음주운전자의 15%가 세 차례 이상 음주운전을 한 상습범”이라며 “특히 버스 운전사 등 생계형 운전자일수록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하는 등 엄격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심의 차량속도를 줄이는 것도 강조했다. 과속은 음주운전과 함께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다. 페이펠 연구원은 “보행자 통행이 잦은 도심에서는 시속 60km도 빠르다”며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40%인 점을 볼 때 도심의 차량속도 하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교통안전 선진국들의 강력한 교통안전 정책 경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