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회장직 사퇴 이유는…
이 회장은 이날 블록체인 이야기를 꺼내며 사퇴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에 블록체인 기술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 같은데, 나는 블록체인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 만약 회사에서 나한테 블록체인에 대한 의사 결정을 묻는다면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았다”며 “중장기 전략을 보고받았는데 나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보고를 하는 것 같더라. 너무 슬펐고, 그래서 퇴임 결심을 더 굳혔다”
이 회장은 사퇴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돌아가신 부모님 위패가 모셔진 절을 찾아 “늦었지만 큰 짐을 내려 놨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여행은 창업의 가장 좋은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작년에 미국에 잠깐 가서 젊은 친구들을 40∼50명 만났었는데, 엄청 똑똑한 사람이 많더라.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회장을 맡고 나서 23년간 회의 시간에 단 한 번도 존 적이 없다. 아들한테도 ‘안 졸 의무는 있어도 졸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말도 했다”며 “아들이 재능이 없으면 재산은 몰라도 주식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아들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며 웃었다.
1남 2녀를 둔 이 회장이 ‘네 번째 자식’이라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갖고 투자한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친구가 하던 연구였는데, 회사 연구소장에게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물어 보니 성공 확률이 ‘0.0001%’라고 보고하더라. 오기가 생겨서 회삿돈 말고 내 돈과 지인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사퇴를 알리는 편지에서 퇴임 이후 새로운 창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에게 구체적인 창업 계획을 묻자 “창업 시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1년이 넘을 수도 있다. 회사를 차리더라도 내가 직접 CEO는 안 하고 싶다. 다만 천재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 이제는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