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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삼한사미

입력 | 2018-11-29 03:00:00


‘하루 저녁은 바람이 몹시 불고 그 이튿날 새벽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려 쌓였다. … 그 다음 날부터는 며칠 동안 날이 풀려 꽤 따뜻했다.’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에는 우리나라 겨울 날씨 특징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이 가난한 화수분 가족의 비극을 묘사하는 장치로 여러 번 등장한다. 추위가 풀렸는데도 행랑아범 화수분이 돌아오지 않자 행랑어멈이 찾으러 떠나는 식으로다.

▷미세먼지가 극성인 요즘엔 삼한사온에 빗대서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 불청객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고기압 발달로 바람이 세게 불면 미세먼지가 밀려갔다가 바람이 약해지면 한반도 상공에 정체돼 나타난다. 지난겨울 초미세먼지(PM2.5)가 ‘나쁨’(m³당 36μg 이상)일 때 일평균 기온은 1.3도였다. 미세먼지에 중국 내몽골 부근에서 발원한 황사까지 겹친 그제도 전국은 하루 종일 영상이었다. 추우면 추워서 걱정, 포근하면 포근한 대로 걱정거리가 생겼다.

▷한반도 대기오염에 중국발 요인이 큰 몫을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에서도 23∼26일 수도권과 중부 지역에서 스모그와 황사가 덮쳐 올겨울 최악의 대기오염을 기록했다. 중국판 삼한사미일까. 잠시 주춤했던 스모그가 30일부터 또 기승을 부린다니 우리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2015년 중국중앙(CC)TV 출신 여성 앵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돔 지붕 아래서’에 따르면 베이징은 1년 중 175일이 오염된 날. 즉 한 해 가운데 절반은 마음 놓고 밖에 나갈 수 없다. 이 다큐에는 한 어린이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을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창문을 여는 것이 위험하고 숨쉬는 것도 겁나는 세상, 이제 깨끗한 공기를 누리는 일은 사치가 된 것인가. 화수분과 아내가 껴안은 채 동사(凍死)한 삼한사온 겨울처럼 삼한사미 겨울 역시 취약계층에 한층 가혹하다. 하루 일당을 포기할 수 없거나, 공장 주변에 살거나, 마스크 살 돈도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대기오염, 환경재해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바라봐야 할 이유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