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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발리볼] 삼성화재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김강녕

입력 | 2018-11-15 05:30:00

삼성화재 리베로 김강녕은 프로입단 11년차이지만 이번 시즌이 자신의 8번째 시즌이다. 오랜 세월 2∼3번 리베로였던 그는 스스로가 설정한 한계에서 벗어나 팀의 승리를 견인하는 굽은 소나무다. 사진제공|KOVO


2014년 4월 3일 밤이었다. 2013~2014시즌 V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이 끝난 뒤였다. 리그우승팀 삼성화재는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 1~2차전에서 연속해 먼저 4세트를 내줬지만 2차전 2세트 듀스에서 기사회생한 뒤 내리 9세트를 따내며 시리즈전적 3승1패로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천안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축승행사. 7시즌 연속 우승팀답게 뒤풀이 행사가 조직적이었다. 식사 뒤 여흥시간에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선수는 김강녕이었다. 평소 노래 잘 한다는 소문답게 구성지게 잘 불렀다. “당신을 향해 무조건 달려갈거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승을 향해 질주하는 팀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삼성화재의 우승 잔치는 없었다.

● 수련선수로 시작해 삼성화재에서 8시즌 동안 버텨온 김강녕

2008년 11월 3일. 당시 조선대 졸업반 김강녕은 삼성화재의 수련선수로 입단했다. 문성민~신영석~최귀엽~황동일~박상하가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았을 때였다. 여오현이 버티는 삼성화재에서 고작 1년의 기회를 보장받은 수련선수의 운명은 뻔했다. 4경기에서 7세트 동안 코트를 잠깐 밟았다.

시즌 뒤 옷을 벗었다. 팀 사정상 다른 선수가 오자 엔트리를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실업팀에서 해보던가 아니면 다른 인생을 찾아보겠다고 팀을 나왔지만 1년 뒤 다시 돌아왔다. 그만한 선수도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당시 신치용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는 상상 이상으로 훈련이 힘들었다. “삼성화재 선수로 3년만 버티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던 말이 선수들 사이에 나돌았다. 꼭 필요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는 버텼고 살아남았다.

삼성화재 김강녕. 사진제공|KOVO


문제는 하체였다. 누구보다 민첩하고 발이 빨라 리베로에게 필요한 요소를 갖췄지만 안정성이 떨어졌다. 무릎으로 상대의 강한 서브를 버텨내지 못했다. “오래 기다려서 공을 품어라”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여오현이 떠났지만 주전 리베로는 이강주~곽동혁~부용찬이 차지했다. 2014~2015시즌을 앞두고 김강녕은 군에 입대했다.

프로입단 11년차이지만 이번 시즌이 자신의 8번째 시즌으로 기록된 이유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제대 이후에도 여전히 2~3번 리베로였다. 오랜 시간동안 그를 가로막은 것은 기량이 아닌 마음이었다. 멘탈이 약했다. 스스로가 설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보조선수이지 어차피 해도 주전이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문제였다.

● 김강녕의 운명을 바꾼 결혼과 동료들의 격려

그러는 가운데 차츰 나이는 찼다. 지난해 가정을 꾸렸다. 주례는 신치용 당시 단장이 했다. 주례사는 이랬다. “신랑이 착하고 성실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끼도 있는데 이제 가정을 이뤘으니 단단한 선수가 되고 가정을 책임지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주례사에 신랑과 신부는 물론 하객들도 웃었다.

그 결혼이 김강녕의 인생을 바꿨을 줄은 누구도 몰랐다.

신진식 감독은 2018~2019시즌을 앞둔 구상에서 김강녕을 빼려고 했다. 대신 다른 팀에서 FA 선수 영입을 검토했다.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졌지만 “이제 막 결혼해 가정을 이룬 선수를 내 팽개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주위의 만류와 인간적인 배려 등 복합적인 요소가 그 결정을 막았다.

프로야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94년 LG-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1회 끝내기 결승홈런을 때린 김선진이 그랬다. 1994시즌을 앞두고 아웃될 선수였지만 구단직원과 막 결혼한 그를 내칠 수가 없어 방출을 미뤘던 결과가 바로 한국시리즈의 운명을 바꾼 홈런이었다. 그 이후 김선진은 LG에서 무려 6시즌을 떠 뒤면서 많은 활약을 했다.

삼성화재에서의 선수생명은 연장 받았지만 KOVO컵 때의 활약과는 달리 1라운드 내내 김강녕의 리시브는 불안했다. 부용찬을 OK저축은행의 보상선수로 내준 뒤라 다른 해결방법은 없었다. 시즌 도중에 새로운 선수를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신진식 감독이 택한 것은 훈련과 서로의 신뢰뿐이었다.

삼성화재. 사진제공|KOVO


박철우 등 동료들은 계속 김강녕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다. 신치용 고문도 “리베로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 멀리보고 차근차근 해나가라”며 응원했다. 흘린 땀의 가치는 코트에서 확인됐다. 차츰 리시브가 안정됐다. 동료들의 격려도 김강녕에게는 큰 힘이 됐다. 덕분에 스스로를 이겨냈다. 마침내 13일 현대캐피탈과의 2라운드에서 인생경기를 했다. 61%의 리시브성공률과 3개의 디그가 팀을 수렁에서 이끌어냈다.

경기 뒤 처음으로 하는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그의 솔직한 얘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가도 촉촉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성과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이다.

선산은 멋진 큰 나무가 아니라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굽은 소나무가 지킨다. 삼성화재의 코트는 이제 32세의 가장 김강녕이 지킨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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