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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대통령의 시간’ 1년 반

입력 | 2018-11-12 03:00:00

文 취임 1년 반, 새 경제팀 출범… 李 책임총리도 ‘정상외교 한 축’
대통령 성패 가를 향후 1년 반… 외교안보에서 善意 믿으면 실패
‘내 편’ 믿는 인사도 결국엔 毒




박제균 논설실장

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11월 9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의미심장한 날이다. 먼저 문 대통령에게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지 정확히 1년 반 되는 날이다. 지난해 5월 9일 오후 11시 50분경 당선이 확정된 문 후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의로운 나라’를 첫 번째 목표로 앞세우며 “정의가 앞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1년 반 뒤인 9일 대통령은 2기 경제팀을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같은 날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고,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집단에 집중됐다”며 반칙과 특권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역설했다. 새 경제팀에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일관성이야말로 인간 문재인의 장점이지만, 1년 반 전이나 지금이나 참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금요일, 국정의 전면에 큰 걸음을 내디딘 또 한 사람은 이낙연이다. 함께 일했던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로 가면서 경제 분야도 이 총리의 통할(統轄) 아래 들어왔다는 건 익히 아는 분석이다. 그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같은 날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다. 2, 3명의 정상이 정상외교에 나서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면서 ‘이 총리도 정상외교의 한 축’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취임 1년 반을 맞아 이 총리는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의 반열에 올라섰다. 아니, 문 대통령 말대로 정상외교까지 담당한다면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총리 이상이다. 과거 프랑스 동거(Cohabitation) 정부에선 정상외교 때 다른 나라 정상들이 대통령보다 내치에 실권을 가진 총리를 만나려고 줄을 서는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한국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총리에겐 급격히 늘어난 권한만큼 무거워진 정치적 책임이 족쇄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1년 반을 기점으로 총리에게 경제는 물론 외교 권한 일부까지 넘겨주려는 대통령의 의도는 자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지상명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은 대통령을 하는 목적인 ‘세상 바꾸기’와 직결돼 있다. 평화가 정착되면 ‘분단 구도와 전쟁 위협을 빌미로 세상을 지배해온 사이비 보수세력’의 설 땅이 사라질 것이란 시각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말을 경청은 하되, 웬만해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게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건 지난 1년 반이 입증한다. 다만 문 대통령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점점 당겨지는 추세로 볼 때 ‘대통령의 시간’은 1년 반 정도라고 본다. 더구나 1년 5개월 뒤인 2020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임기 후반 총선 뒤엔 급격히 미래권력으로 파워가 쏠리는 것이 우리 대통령제의 한계다.

앞으로 1년 반을 어떻게 치러내느냐가 문 대통령 시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것이다. 길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명운(命運), 어쩌면 국운을 좌우할 이 중차대한 시간에 대통령이 반드시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는 선의(善意)를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에서 상대의 선의를 믿었던 수많은 지도자들이 무능한 리더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 믿고 싶으면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Trust, but verify).

이는 비단 남북관계나 외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의 만사(萬事)라고 할 수 있는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통치철학에 맞는 사람을 중용하면 잘해 주겠지, 하는 선의의 기대는 대통령에게 독(毒)이다. 일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인사를 하면 줄줄이 탈이 나기 십상이고, 그 실패는 결국은 본인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른바 ‘내 편’이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향후 1년 반, 다시 말해 정권의 성패가 걸려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