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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필적]〈32〉뚝심 있는 대학총장 김준엽

입력 | 2018-11-09 03:00:00


김준엽 서간.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김준엽 고려대 총장만큼 존경받는 인물도 드물다. 선생은 제국주의와 군부독재라는 두 시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6000리를 걸어서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갔고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선생과 함께한 이는 평생의 동지 장준하였다. 선생의 ‘g’와 ‘y’의 둥근 부분이 길고 큰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로선이 매우 긴 것은 주로 운동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인내심을 말해준다.

그는 광복 후에는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국무총리, 장관, 당 사무총장 등 공직 제의를 뿌리치고 양심을 지켰다. 고려대 총장에 취임해서 학원 내에 상주해 오던 기관원을 축출하고 해직교수 전원을 복직시켰다.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직선제 총학생회 부활도 관철했다. 총칼로 정권을 장악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전두환에게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다며 버텼다. 선생이 전두환 정권의 압박으로 강제 사퇴하게 되자 학생들은 한 달 남짓이나 ‘총장 사퇴 결사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선생의 행적에는 강직한 성격과 함께 낙천적 성향, 판단력, 유능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모서리에 각이 뚜렷한 것은 강직함을 말해주고 ‘a’의 끝부분이 매우 긴 것도 생각이 확고함을 나타낸다. ‘f’의 윗부분이 좁은 것은 감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g’의 마지막 부분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나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은 낙천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필획의 마무리가 확실하고 ‘R’의 윗부분이 납작한 것은 마음이 넓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f’가 아래위로 매우 긴 것은 현실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은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 역사의 신을 믿어라. 정의와 선,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 말을 실천했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