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징용피해 배상 확정판결]‘일제 강제징용’ 판결 6년 지연, 왜
2012년 5월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처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6년 5개월 뒤인 지난달 30일 뒤늦게 이 판결을 확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대법원이 그 당시 한일 외교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정부의 영향을 받아 고의로 재판 심리일정을 조정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터닝포인트는 ‘2015년 12월 한일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지난 2015년 5월까지 대법원은 판결을 확정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는 별도로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을 2015년 5월 이전 확정한다면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이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이 이를 피하려고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규칙 개정 이후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을 미루면서 로드맵 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2015년 12월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합의 직후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합의에 반대하자 외교부가 부담을 느낀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 배상 인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보낼 경우 매국노 소리를 들을까 봐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2016년 7월경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곽병훈 전 대통령법률비서관에게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재촉했고, 곽 전 비서관은 “대법원에서 다 오케이 했는데 왜 이렇게 늦어지냐”며 외교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A 행정관은 외교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빨리빨리 진행하라’고 질책했다”고 전하며 의견서 제출을 촉구했다.
또 같은 해 9월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을 송금한 뒤 임 전 차장은 외교부 청사를 직접 찾아갔다.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위한 규칙 개정 1년 10개월 만인 2016년 11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결국 로드맵 시행이 중단됐다. 검찰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14만 명 이상의 추가 소송 제기를 막았기 때문에 대법원과 청와대·외교부 간의 ‘재판 거래’가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