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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기본기에 가장 충실한 ‘문무일의 검찰’이 답이다

입력 | 2018-10-24 03:00:00


정원수 사회부 차장

木人嶺上吹玉笛(목인령상취옥적·나무 사람 고개 위에서 옥피리를 불고)

石女溪邊亦作舞(석녀계변역작무·돌 여자가 시냇가에서 또한 춤을 춘다)

대검찰청 8층 문무일 검찰총장의 집무실 책상 옆 벽에 걸려 있는 족자의 글귀다. 지난해 7월 초 부산고검장이었던 문 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부산을 떠나게 됐다. 당시 관내 고찰(古刹) 범어사의 주지 경선 스님이 문 총장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이 족자를 건넸다.

문 총장은 경선 스님에게 “무슨 뜻이냐”며 해석을 부탁했다. 경선 스님은 “(우둔하다는 뜻의) 나무 사람이 어떻게 피리를 불고, (수태를 할 수 없다는 뜻의) 돌 여자가 어떻게 춤을 추느냐. 총장을 하다 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많이 생길 테니, 그럴 때마다 이 글을 보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귀는 불교계에서 회자된다. 선승(禪僧)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향곡 스님(1912∼1979)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임종게(臨終偈·죽음의 시)이기 때문이다. 한때 범어사에 머물렀던 향곡 스님은 “모든 것을 수용하라”는 의미로 임종게를 썼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7월 25일 취임한 문 총장의 재임 15개월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취임 전부터 녹록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와 정치권, 법원, 경찰, 여론이 검찰에 비우호적이어서 ‘검찰이 오면초가(五面楚歌)에 놓였다’는 얘기가 있었다. 검찰 개혁 입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취임 뒤 문 총장은 검찰 안팎의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안으로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단이 문 총장의 부당한 수사 지휘 의혹을 제기하며 항명했고, 검찰총장의 제1참모부서인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압수수색했다. 밖으로는 전직 대통령 2명과 5명의 전직 국가정보원장 등 과거 정권의 최고위층을 상대로 적폐청산 수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현직 검사가 투신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그 위기들을 다 돌파했지만 문 총장은 여전히 위기다. 그는 최근 지인들에게 “검사들이 밤잠을 못 자고 수사하는데, 너무 힘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것이다. 몇몇 판사가 아니라 사법부를 상대로 한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는 문 총장도 상상을 못 했던 일이다.

구도하는 선승들이 답을 결국 자신에게서 찾듯 문 총장의 고민을 해결할 답도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다. 사법연수원 동기들에게 “문 총장은 어떤 검사냐”고 물으면 항상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기에 가장 충실한 검사”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문 총장의 검사 3년 차 때 일화를 근거로 든다. 1994년 남원지청에 근무할 때 경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겠다”며 지휘를 요청했다. 문 총장은 부검 지휘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시신에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며 부검을 지시했다. 그 덕분에 이른바 ‘묻지 마 연쇄 살인’의 대표 격인 지존파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그는 요즘 매주 주례 회동 때 사법부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사법부를 상대로 절제된 수사를 하라”고 지시한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더 충실하게 수사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영장 기각 등 외부 탓을 하기보다는 의혹을 낱낱이 밝히라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 묵묵히 수사하면 된다. 그리고 죄가 된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기소하는 게 ‘문무일 검찰’이 다시 한번 위기를 돌파하는 길이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