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은각사를 방문하면 좌우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시원하게 뻗어 있는 길을 만난다. 그 길을 따라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비로소 매표소가 보인다. 이 길도 기초적인 방어설계이다. 침입자는 자신을 노출하며 걸어 들어와야 하지만, 통로의 안쪽에 수비대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아시리아 제국의 궁전도, 터키의 깊은 산속에서 발견된 신비의 제국 히타이트의 궁전도 이런 길고 꺾어진 통로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조선시대 군영이었던 장용영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내부에서 무기고로 가는 길은 좁고 끝이 꺾어진 통로를 설치했던 것을 도면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국내의 치안이 확실했던 조선에서는 궁이나 민간주택에 이런 군사용 설계를 적용한 사례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주택구조의 경우처럼 우리는 이런 교류에 대한 가시적인 체험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군사 분야를 필요는 하지만 불편한 분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군사정권 시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용이 있다면 바로잡아야지 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젠 민과 군이 모두 고민하고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