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날 특집] 김미경·조다솜 서귀포경찰서 형사 수사반장·히트 보며 꿈 키워…“억울한 사람 없도록”
지난 19일 서귀포경찰서 앞에서 김미경 형사(43·오른쪽)와 조다솜 형사(24·왼쪽)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18.10.21/뉴스1
“마흔살이 다 되어서야 형사의 꿈을 이뤘죠.”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이틀 앞둔 19일 서귀포경찰서에서 만난 김미경 형사(43·경위)는 어릴 적 드라마 ‘수사반장’을 보며 형사의 꿈을 키웠다며 소녀처럼 웃어보였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첫 여성총경까지 나오며 여경에 대한 ‘유리천장’이 깨졌다곤 하지만, 강력범죄를 다루는 형사과에서 여경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도내 3개 경찰서별로 형사과에 배치돼 근무하는 여경이 있긴 하지만 내근을 하며 지원업무를 담당할 뿐 현장을 누비는 여경은 김 형사가 유일했다.
18년 전 경찰에 입문한 김 형사는 줄곧 지원업무만 하다 2014년부터 서귀포경찰서에서 외근 형사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김 형사는 “외근 형사를 하고 싶어도 지원만 한다고 무조건 되는 게 아니었다”며 “여경과 함께 일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지원업무를 통해 수사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는 김 형사는 2인1조 밤샘 잠복근무는 물론 피의자 검거까지 여느 형사들과 다름없이 역할을 해냈다.
2016년 서귀포 안덕면에서 발생한 중국인 여성 살인사건 당시 약 한 달간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쌍둥이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래도 일에 전념할 수 있던 이유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서운해할 법도 하건만 올해 14살이 된 쌍둥이 자녀는 엄마가 형사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늦은 귀가나 주말 근무를 탓하지 않았다.
경찰조직 내에서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는 선입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고,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부각됐다.
살인사건으로 엄마를 잃게 된 한 여자아이를 돕기 위해 주기적으로 형사들끼리 십시일반 모은 돈을 전달하는 것도 김 형사의 몫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에게 그는 ‘이모’로서 말을 건넸다.
여성 피의·피해자 수사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인권문제를 챙기는 것도 김 형사의 몫이다. 조사는 물론 유치장이 있는 제주시까지 3시간가량 걸리는 호송도 김 형사가 챙긴다.
19일 서귀포경찰서에서 김미경 형사(43·왼쪽)와 조다솜 형사(24·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8.10.21/뉴스1
지난 8월부터 서귀포경찰서에 발령 온 조다솜 형사(24·순경)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조 형사는 대구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올해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경찰일을 시작했다.
서귀포 중동지구대에서 근무한 지 두달 가량 됐을 무렵, 양호철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부터 형사과에서 근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지난 5년간 김 형사을 지켜보며 여형사의 필요성을 느낀 양 과장이 충원이 필요하다고 느껴 내린 결정이었다.
배우 고현정이 여경으로 나온 드라마 히트를 보며 형사의 꿈을 키웠다는 조 형사는 이른 제안에 놀라면서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꿈을 못 이룰 것 같아서 바로 승낙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6일부터 형사2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조 형사는 “방금도 절도사건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고 오는 길인데 아직도 (형사가 된 게) 실감이 안난다”며 “김 형사님이 일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롤모델로 삼게 됐다”고 들뜬 어조로 말했다.
최근에는 단순 변사로 묻힐 뻔한 모텔 노숙자 사망사건이 부검 결과 살인사건으로 전환되자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곳곳을 다니며 CCTV를 추적하기도 했다.
조 형사는 “발로 뛰는 걸 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고 열의를 보이며 “범인도 잡고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주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조 형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 형사는 “다그치기 보다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것만으로 사건이 해결되기도 한다”며 “인간미 넘치는 형사이고 싶다”고 바랐다.
이를 위해 범죄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 형사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고 싶다”며 “법집행 과정에서 우리(경찰)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려는 제주의 단 두 명뿐인 여형사들의 강단 있는 눈빛 속에서 따뜻함이 묻어났다.
(제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