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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윤상호]‘항행의 자유’

입력 | 2018-10-16 03:00:00


18세기 후반 지중해는 이슬람 해적들의 안마당이었다. 그중에 트리폴리에 근거지를 둔 해적은 신생국 미국의 골칫거리였다. 미국 상선을 노린 해적의 약탈과 거액 요구에 맞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일전불사를 선언하고, 군함과 병력을 파견했다. 이렇게 시작된 트리폴리 전쟁(1801∼1805년)에서 미 해군은 대대적인 해적 소탕에 나서 항복을 받아냈다. 이달 초 남중국해에서 중국 함정과 충돌할 뻔한 미 해군의 디케이터함은 당시 전공을 세운 스티븐 디케이터 제독의 이름을 딴 구축함이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작전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멀리서 미 함정의 동태를 살피는 차원을 넘어 이번처럼 충돌 직전까지 간 경우는 처음이다. 최근엔 남중국해 전역에서 적대국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최신예 전략폭격기(H-6J) 4대가 중국 남부 기지에 배치됐다고 환추(環球)시보가 14일 보도했다. 2016년과 지난해에는 남중국해에서 비행 중인 미 해군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가 바짝 접근하는 바람에 양국 간 날 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항행의 자유는 19세기 이래 국제법으로 확립된 ‘공해(公海) 자유 원칙’에 근거한다. 공해에선 주권이 행사될 수 없고,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가 보장된다는 게 핵심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대부분 해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2016년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 섬에 군사기지를 구축해 남중국해를 독식하려는 중국의 행태는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남중국해는 세계 연간 교역량의 3분의 1이 통항하는 곳이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과 교역의 핵심 통로이기도 하다. 이런 바다를 독점 소유하겠다는 중국의 태도에선 자국 이기주의를 넘어 대국의 오만함이 짙게 배어난다.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하고 힘으로 남중국해의 실효적 지배를 굳히려 들수록 주변국의 반발과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지도국도, 중국의 부흥을 위한 중국몽(中國夢)도 요원할 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