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원정대 참변]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헬기는 현지 시간 14일 오전 7시 15분 사고 지역에서 70km 떨어진 포카라시를 출발해 오전 8시경 현장에 도착했다.
가파른 지형 탓에 헬기가 착륙할 수 없어 구조대원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와 시신을 한 구씩 차례로 수습했다. 당초 기상 문제로 수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날씨가 좋아 구조작업은 3시간 만에 끝났다. 사고 현장 인근 구르자카니 마을에서 신원 확인 및 경찰의 사건조서 경위조서 등을 작성한 후 헬기 2대를 동원해 카트만두로 출발해 오후 5시 15분경 트리부반 국립대병원에 시신들이 안치됐다. 주네팔 한국대사관 측은 현지 병원 및 경찰 당국과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부검 및 장례 관련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 대사관 직원 1명이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다.
○ 이례적 돌풍이 앗아간 현장
시신 수습해 카트만두 병원 안치 구조대가 14일 헬기를 띄워 구르자히말 원정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해 이송하고 있다. 구조대는 시신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위치한 트리부반 국립대병원에 안치했다. KBS 영상 캡처
원정대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11일이었다. 김 대장의 친구인 서기석 유라시아트랙 대표는 “격려 차원에서 베이스캠프를 방문했던 정준모 전 한국산악회 이사가 11일 최홍건 한국산악회 고문과 만나기로 약속한 베이스캠프 인근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 고문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해 듣고 내가 베이스캠프로 위성전화를 시도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2일 서 대표 등이 현지 가이드를 동원해 베이스캠프 수색을 실시한 끝에 시신이 널려 있고 베이스캠프가 파괴됐다는 것을 파악했다.
김 대장의 사고가 정상에서 가까운 캠프가 아닌 베이스캠프에서 일어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베이스캠프는 인근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에 설치되기 때문이다. 남선우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장은 “베이스캠프는 산악인들의 휴식처이자 보급처로 통한다. 많은 인원이 몰려 있는 곳에서 사고가 발생해 희생자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을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산악연맹 측은 “베이스캠프에 돌풍이 불어닥치면서 이에 휩쓸려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변기태 한국산악회 부회장은 “사고 현장에는 돌풍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시신 9구가 상당한 거리로 모두 분산돼 있고, 계곡 쪽에 나무가 뽑혀 베이스캠프로 올라와 있다. 눈사태가 원인이었다면 시신들이 한곳에 몰려 있는 상태로 발견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변 부회장은 “시신 중 일부는 침낭 안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밤에 자다가 폭풍이 불어닥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발 7193m의 구르자히말이 속한 다울라기리산군은 최고봉 높이가 8167m로 세계에서 7번째로 높다. 지형이 거칠고 급경사가 많은 구르자히말에는 수직 높이가 3000m에 달하는 거대한 벽이 있다. 김 대장은 아직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이 남벽에 ‘코리안웨이’라는 신루트를 개척하려고 했다.
7년 전에도 한국 산악계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던 박영석 대장은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려다가 실종됐다. 둘의 도전에는 한국 산악인들의 사명감이 숨어 있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의 최초 정복 등 많은 기록은 19세기부터 도전을 시도한 유럽 산악인들의 몫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산악인들은 아직까지 남겨진 최고 난도의 코스 개척을 위해 도전해왔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