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알리바바를 놓친 홍콩 증시는 30년 전통을 바꿔 올해 7월 차등의결권을 허용했고, 이 덕분에 시가총액이 10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샤오미라는 또 다른 대어(大魚)를 낚았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마침내 백기를 들고, 지난달 27일 기술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기업들이 안정된 경영권의 토대 위에서 투자와 생산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하고 있다. 이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이 같은 국제적인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는데, 유독 한국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심지어 공정위가 지금까지 순환출자식 지배구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해온 지주회사에 대해서조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문제는 둘째로 치자. 한국의 대기업들은 2003년경부터 정부의 유도에 따라 하나둘씩 지배구조 체제로 전환해 왔다.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12개가 과도한 비용 등의 문제로 아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 계산에 따르면 이들 12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할 경우, 규제 강화로 인해 상장회사 지분 매입에 12조9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생산적으로 투자할 경우 27만8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본회의를 열어 은산분리완화법(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은산분리완화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핵심 지지세력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국회 통과에 힘을 실어준, 일명 ‘혁신성장의 1호 법안’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의 시행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간접효과를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약 5000개라고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혁신성장 1호 법안이 어렵게 만들어내려는 일자리의 55배를 허공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법안인 셈이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규제 완화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도 성과가 미흡했던 이유는 사라진 작은 규제의 빈자리를 더 크고 더 고약한 규제가 채워 왔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규제 권력을 틀어쥐고 내놓지 않으려는 관료집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공정위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혁신성장의 적(敵)은 세종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