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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는 두산… 감독 할 일이 별로 없다”

입력 | 2018-09-29 03:00:00

4년 연속 KS 이끈 김태형 감독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야구계에서 종종 쓰는 말이다. 2015년 두산 지휘봉을 잡은 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을 잘 만났고, 때를 잘 만났을 뿐”이라며 모든 공을 주변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가 팀을 이끈 뒤 두산은 팀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 ‘두 얼굴의 사나이’ 등으로 불리는 그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며 팀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그는 상대를 제압하는 날카로운 시선(왼쪽 사진)과 사람 좋은 웃음(오른쪽 사진)을 동시에 갖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15년 감독 부임 후 4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팀을 이끌었다. 올 시즌 포함 2차례 정규시즌에서 우승했고, 3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도전한다. 이만하면 명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

27일 한화와의 대전 방문경기에 앞서 만난 김태형 두산 감독(51)에게 우문(愚問)을 던졌다. “이런 결과는 운(運)입니까, 아니면 실력입니까.” 그의 입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현답(賢答)이 나왔다. “감독은 운이고, 선수는 실력입니다.”

2015년 김 감독 부임 후 두산은 왕조(王朝)로 불릴 정도로 막강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28일 현재 87승 48패를 기록 중인 두산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대 최다승(2016년 93승) 경신도 바라보고 있다. 곰의 탈을 쓴 여우, 일명 ‘곰탈여우’로 불리는 김 감독으로부터 더욱 강해진 두산의 비결을 들었다.

―두 얼굴을 가진 지도자라는 평을 듣는다.

“평소에는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즐겁게 야구 하자는 게 내 주의다. 그렇지만 야구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 때 무섭다는 얘기를 듣는다.”

―부임 때부터 기본을 강조했다. 기본이란 어떤 것인가.


“그라운드에 선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 젊은 선수건, 40세 베테랑이건 야구장에서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야구는 개인 운동이 아니다. 팀이 이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떤 때에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하나.

“야구 못한 걸로는 절대 뭐라 하지 않는다. 타자가 삼진 먹고, 투수가 안타 맞는 것은 선수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야구가 안 되면 제일 힘들고 속상한 건 선수 자신이다. 다만 자신감 없이 스윙하거나, 우물쭈물 플레이하는 건 안 된다. 자기 야구 안 된다고 인상 쓰고 있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팀을 위해 파이팅을 해야 한다. 기본을 안 지키는 선수들에게는 한 번씩 메시지를 준다. 말로 할 때도 있고, 눈빛 레이저를 보낼 때도 있다(웃음).”

―메시지를 줄 때 직설하는 걸로 유명하다.


“돌려 말하다 보면 말이 길어진다. 짧고 간결하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코치를 거치지 않고 선수를 불러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두산이 진짜 강팀인 이유는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애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태형 감독. 대형견인 중앙아시아 셰퍼드 3마리를 키운다. 두산 제공

“오재원, 김재호, 김재환 등 고참 선수들이 두산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선수들에게 야구는 자존심이다. 최고의 플레이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경기 후 피곤할 텐데도 실내 연습장에서 방망이를 돌리는 모습을 볼 때엔 ‘그만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고참들이 그렇게 노력하니 밑에 어린 선수들은 어떻겠나. 젊은 선수들은 어릴 때 이런 습관들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잘 모르는 어린 선수들 중 훈련을 마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다 나와 마주쳐 메시지를 받은 경우도 있다.”

―감독 부임 후 만들려 했던 야구 색깔이 잘 스며든 것 같다.

“이젠 선수들이 어떤 행동을 감독이 싫어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더 잘 안다. 지난해 후반부터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걸 느꼈다. 만약 기본을 지키지 않은 플레이가 나오면 내가 뭐라고 말하기에 앞서 자기들끼리 먼저 지적하고, 파이팅을 하자고 외치더라. 요즘은 그래서 감독이 할 게 별로 없다.”

―기본을 지키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나.

“운동 외적인 부분은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 우리 팀에서는 주장(현재 오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매일 라인업을 짤 때도 주장을 중심으로 선수들 스스로가 결정하게 한다. 자기들끼리 얘기해서 정말 쉬어야 하는 선수를 쉬게 하는 것이다. 내가 ‘뛸 수 있냐’고 물어보면 어느 선수가 ‘저는 못 뜁니다’라고 하겠나. 스스로 결정하게 하니 오히려 더 참고 열심히 뛴다. 내가 현역 시절 주장을 할 때 김인식 감독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1위 팀 감독이지만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성적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하나는 골프이고, 또 하나는 개 키우기다. 경기 남양주 집에서는 작은 애완견을 키우고, 의정부의 농장에 대형견 3마리를 위탁해 키운다. 개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큰 덩치의 개들이 달려와 안기면 나도 모르게 힐링이 된다. 비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가서 만나는데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가지 못한다. 기다리고 있을 개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어느덧 4년 차 감독이 됐다. 어떤 리더
가 되려 하나.

“야구엔 정답이 없다. 성적이 모든 걸 말해줄 뿐이다. 성적만 잘 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렇지 못할 때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감독 부임 때부터 선수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첫째도 기본, 둘째도 기본을 강조했다. 지금이야 성적이 잘 나니 그게 정답인 것 같지만 만약 성적이 안 난다면 구단은 당장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대전=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