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KBO총재가 12일 서울 강남구 KBO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과정의 공정성 등 최근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스포츠동아DB
정운찬(71) KBO 총재는 스승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국내에서 대표적인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로 꼽힌다.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KBO리그는 거대한 시장이다. 야구경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을 경기장, TV와 인터넷 중계를 통해 판매한다.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의 이미지도 포함된다.
정 총재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공식 직함인 총재 대신 ‘커미셔너(Commissioner)’라고 즐겨 말한다. 총재와 커미셔너, 최고 결정 책임자라는 사전적 의미는 동일하다. KBO 10개 회원사가 리그의 발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최고 관리자다.
시작은 작은 균열이었지만 여론은 계속 악화됐다. 야구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응원한다’는 비난 속에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커미셔너는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대표팀은 AG에서 실업선수가 주축인 대만, 일본을 상대로 고전했다. 대만에는 패했고 일본을 압도하지 못했다. 일본과 결승전에서는 3-0으로 이겼지만 안타는 4개뿐이었다.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 자카르타에는 수십 여명의 국내 취재진이 있었다. 금메달을 자축 하기 전 선수선발 과정의 여러 문제점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세 번째 기회도 있었다. 자카르타에는 프로야구 9개 구단 대표이사들이 있었다. 각 구단은 여론의 심각한 동향을 대표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구단 대표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귀국 직후 총재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정 총재를 비롯한 KBO 수뇌부는 망설이며 또 한번 중요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정 총재는 “2014 AG 이후 관중과 시청률 감소 폭보다 현재 하락폭이 크지 않다. 리그 중단의 영향이다”고 말했지만 이는 당시와 현재의 상황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오판이었다. 아울러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안일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 총재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한국미래야구협의회를 구성해 그동안의 문제점 진단과 국가대표 운영 시스템, 실업야구, 학생야구 등 전반적인 싱크탱크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운영 계획은 없었다. 당장 시급한 문제점으로 꼽힌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전임감독이 관장하고 과거 기술위원회의 장점을 살리는 노력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확정된 개선책은 없었다. 정 총재는 AG 이후 선동열 감독과는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