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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힘에 부친 국내中企… 中 샤오미에 보조배터리 시장 내줘

입력 | 2018-09-07 03:00:00

[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8대 주력산업 점검<9>중소기업




스마트폰 주변 기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는 2014년 중국 샤오미가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조배터리를 팔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다. 몇몇 중국 제조업체의 일시적 유행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듬해 삼성전자가 배터리분리형 스마트폰 대신 배터리일체형 갤럭시S6를 내놓자 ‘아차’ 싶었다. 이후 배터리일체형이 배터리분리형 단말기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보조배터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A사는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샤오미와의 격차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시 샤오미 보조배터리는 A사 제품보다 용량은 20% 많고, 가격은 4분의 1 수준이었다. 국내 업체들의 맹추격이 이어졌지만 좀처럼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보조배터리 시장에서 샤오미 1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3%에 이른다. A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국 기업에 가격경쟁력만 뒤처졌지만 이제는 디자인,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열세다. 국내 보조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기업 간 거래(B2B)에 치중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중국이 넘보고 있다”고 전했다.

○ 아슬아슬한 리드에 전전긍긍 중소기업

한국의 8대 주력산업이 국내 제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비단 대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연관된 수많은 중소기업의 역할도 컸다. 그런 중소기업들이 최근 자본력, 노동력, 기술력 등 삼박자를 갖춘 중국 기업들에 밀려나며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 중소 제조업체의 체질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시설이나 기술 투자보다 저임금에 기반한 범용제품 생산에 의존해 온 탓이 크다. 세탁세제를 만드는 중소기업 B사는 양질의 원료로 다양한 제품을 소량 생산해 국내외에서 약진하고 있다. 저가 원료로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중국산보다 가격이 2배 이상 비싸지만 품질 차별화로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아 자본력이 풍부한 중국 기업이 언제든 따라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B사 대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아슬아슬하게 우위를 지키고 있는데 중국 제조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같은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기술 차별화로 살아남겠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베트남, 인도 등 개발도상국까지 노동집약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국내 중소기업도 옛날 성장 모델을 탈피해 기술투자를 통한 차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자구적인 연구개발(R&D)투자 노력 못지않게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제값에 사주는 관행 정착도 필요하다. 하청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가로채는 일이 아직도 적지 않다. 2016년 중소기업청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644개 업체가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했고, 연평균 피해액은 3456억 원에 이른다.

대기업의 전속계약 강요도 문제다. 중소기업이 독자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을 특정 기업에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다른 제조업체에도 제공할 길을 터줘야 지속적인 기술개발의 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독일,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특정 대기업이 아닌,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에 제공하고 있다”면서 “큰돈을 들여 제품을 개발했는데 판매처가 한정되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R&D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 대규모 R&D, 정부의 시의적절한 투자 시급

개별 중소기업의 투자 수준을 뛰어넘는 R&D투자의 경우 정부의 선택적 집중과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일례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패널기업인 대기업과 대기업에 디스플레이 부품을 납품하는 많은 중소업체들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거대 장치 산업의 특성상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정을 개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도 장비와 소재를 검증해볼 인프라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개발 기술을 실증해 볼 수 있는 공정 라인을 구축해 디스플레이 패널 시제품을 제작할 공동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학연이 새로운 개념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해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이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혁신공정 플랫폼 구축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국책 연구개발 사업이 매년 감소해 산업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이 플렉시블(구부릴 수 있는), 스트레처블(늘리거나 펼 수 있는)과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의적절한 마중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무경 yes@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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