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태 막기위한 노력 안해" 英 에든버러, 명예시민권 취소 노벨평화상 박탈 요구도 거세지만 노르웨이 노벨委 "규정상 어려워"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국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인종 청소’ 수렁에 빠지면서 군부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명예가 끝없이 추락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유엔 특별조사단은 지난해 8월 미얀마 정부군의 로힝야족 토벌 작전을 ‘인종 청소 의도를 가진 중대 범죄’이자 집단 성폭행 등 반인도주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국내외 시선이 실권자 수지에게 쏠렸으나 이튿날 양곤대에 나타난 그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가치 등 문학 얘기만 했다.
사실상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중요 인권 현안에 침묵한 것이다.
유엔 보고서는 군부 최고사령관 등 6명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부 수뇌부나 수지가 국제법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수지에게는 ‘인종 청소’의 오명이 따라 다니게 됐다.
지난해 8월 25일 미얀마군은 반군 소탕을 빌미로 로힝야족을 향한 무자비한 작전을 시작했다. 이후 한 달 동안 로힝야족 6700명이 총기, 폭력 등으로 희생된 것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추정한다. 당시 살아남은 주민들은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로힝야족 91만5000명이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2016년 3월 수지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미얀마 내 오랜 소수민족 탄압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국제사회는 기대했다. 수지는 2013년 10월 영국 BBC에서 “독재정권의 통치가 길어지다 보니 국민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빚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4월 BBC에서 로힝야족 거주 지역의 분쟁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인종 청소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불교도뿐만 아니라) 무슬림들끼리 서로 죽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지의 권력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미얀마는 민간정부와 군부의 연립정부 형태다. 군부가 만든 헌법에 따라 수지의 권한은 제한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와 치안 관련 3개 장관은 군부 몫이다. 수지의 전기 작가인 피터 포팸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수지는 정부에서 가장 막강한 민간인이지만 주요 정책에 대해 반대할 권리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영국 에든버러시는 옥스퍼드시에 이어 그의 명예시민권을 박탈했다. 수지는 옥스퍼드대 동문인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 국적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도 2012년 수여한 엘리위젤상을 철회했다. 노벨평화상 박탈 요구도 거세다. 다만 AFP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노벨평화상 규정상 박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올해로 정치인 인생 30년을 맞은 수지에게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닥쳐왔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