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확률로 설문대상자 추출하고 응답자 충실히 답변할 때 좋은자료 나와 원칙 제대로 지키지 않은 자료 만들고 숫자 앞세워 합리적 비판 막는 일 없어야… 부실 통계에 기반한 정책은 손실로 이어져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의 고용과 소득에 대한 파급효과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통계의 품질과 왜곡 논란으로 확대되고, 통계청장이 교체되면서 소란은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가계소득에 대한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가 잘못된 표본설계로 인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반갑다. 소득이 매우 높거나 낮은 지역의 응답률이 낮기 때문에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강신욱 통계청장의 고백도 고맙다. 정부가 수집하고 활용한 표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부실한 통계에 기반한 정책이 막대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고 경고해왔지만, 그간 정부는 귀를 닫고 있었다. 최저임금 통계 논쟁에서 등장하는 가계동향조사나 지역별 고용조사도 조사 과정이나 응답률 계산 방식에 대해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전문성 있는 통계청이 수집했으니 믿으라는 식이다. 이는 자료를 부실하게 수집했거나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나는 이번 논쟁을 계기로 대규모 자료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통계청을 포함한 정부 부처가 귀를 열고 무오류의 오만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원칙을 지킨 자료는 못 내놓으면서 숫자를 앞세워 합리적 비판의 입을 막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통계 작성을 위한 제도적 수단과 재원을 독점하고 있는 정치인과 관료의 욕망이 업계의 관행으로 관철되면서 조사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일상에서 저질러지는 평범한 악이 되었다. 조사 대상에 속한 사람들이 뽑힐 확률을 동일하게 만들어 표본을 추출하고 대체하지 않고 그 표본만을 끈질기게 설득할 때 좋은 자료를 얻는다는 선생님의 당부는 조사방법론 교과서의 첫 장에 나오는 규범이다. 장하성 정책실장과 강신욱 통계청장의 조사 표본에 대한 지적이 학계의 비판을 빌려 정쟁에서 빠져나오려는 변명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에야말로 통계를 제대로 구축하겠다는 실천 약속이었으면 한다.
사회 현상이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부터 이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하지만 낮은 비용으로 원칙 없이 구축된 지표는 권력의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내가 자료의 구축과 분석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는 통계가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내 손에 있는 통계가 가진 한계를 알고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 생활 중 방학에 귀국했을 때 조사가 더딘 지역의 응답률을 높여 달라고 거리낌 없이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야속하다가도, 강원도 농촌 할머니의 밭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시원한 음료수가 미지근해질까 봐 조바심을 내던 선생님의 진정성에 감동하곤 했다. 이상한 응답이 있으면 그게 어디든 다시 찾아가 확인했던 선생님의 집요함과 겸손함이 정쟁으로 치닫는 오늘의 통계 논쟁을 보면서 몹시 그리워진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