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서쪽 능선에 보이는 부처님 형상의 와불.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대흥사의 유서 깊은 역사는 사찰 입구부터 만날 수 있다. 50여 기에 이르는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림이 삼나무 숲길 끝과 사찰 입구 사이에 있다. 서산대사(1520~1604)와 연담유일(1720~1799), 초의선사(1786~1866) 등 조선을 대표하는 스님들의 부도가 가득하다.
해남 대흥사 전경-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날 동행한 정병삼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고 평가하며 자신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하게 했다”며 “이후 조선 최고의 선승과 교학승을 배출한 중심 사찰이 됐고, 유네스코도 이 같은 역사성에 특히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해남 대흥사- 표충사.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두륜산으로 더 들어가면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이 있다. 초의선사는 차 이론서인 ‘동다송(東茶頌)’을 집필하는 등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이끈 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나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남 대흥사 전통차밭.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원교의 글씨는 대흥사 한 가운데에 있는 ‘천불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름처럼 옥석으로 만든 부처상 1000개가 모셔져 있다. 이 중 300여 개의 부처상 바닥에는 ‘일(日)’자가 새겨져 있다. 1817년 경주에서 제작한 이 불상들은 3척의 배로 나눠 대흥사로 옮기던 중 태풍을 만나 한 척의 배가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 일본에선 “부처가 왔다”며 반겼지만, 현지 승려가 현몽을 꾼 뒤 이듬해 조선에 되돌려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