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
“아이고 내새끼”… 67년만에 만난 71세 北아들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남측 상봉단의 이금섬 할머니(92)가 아들 리상철 씨(71)를 끌어안고 얼굴을 만지고 있다. 이 할머니는 67년 전 전쟁통에 당시 네 살이던 아들과 헤어졌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26일까지 열린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최 씨는 조카들이 가져온 형의 사진들을 보면서 연신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형의 사진을 계속 쓰다듬던 그는 “보물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20일 판문점선언 이행에 따라 북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은 눈물바다였고, 테이블마다 애끓는 사연이 가득했다. 남측에서는 상봉 신청을 한 89명과 동반가족 108명 등 총 197명이, 북측에서는 185명이 참석했다.
며느리 눈물 닦아주고 백민준 씨(93·왼쪽)가 북한에 있는 며느리 리복덕 씨(63)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백 씨는 “아들이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갔다. 그 소식이라도 들은 게 어디냐”면서 안타까워했다.
○ 북측 딸의 존재 알게 된 아버지 “이건 기적”
“아버지 맛있게 드세요”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만찬에서 안정순 씨(70·왼쪽)가 남측에서 올라온 아버지 안종호 씨(100)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유관식 씨(89)는 이번에 아흔이 다 되어 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6·25전쟁 중 헤어진 아내의 배 속에 딸이 있었다는 것을 상봉을 계기로 알게 된 것. 그는 상봉장에서 딸 연옥 씨(67)를 보자 말없이 꼭 끌어안았다. 딸이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꺼내 보이며 눈물을 흘리자, 유 씨의 눈가도 금세 촉촉해졌다. 유 씨는 금강산으로 가기 전 취재진에 “와, 내 딸이 태어났구나. 내 생애 여태까지 제일 기뻐요. 정말, 이게 꿈인가 보다. 기적이에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신자 씨(99)는 북측에 두고 왔던 두 딸 김경실(72), 경영 씨(71)를 만났다. 딸들이 한 씨를 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한 씨 역시 “아이고” 하며 통곡했다. 흥남에 살았던 한 씨는 1·4 후퇴 때 “2, 3개월이면 다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어린 두 딸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갓난아기였던 셋째만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 한 씨는 “내가 피란 갔을 때…”라고 운을 뗀 다음 두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울먹이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국군포로 한 가족과 전시납북자 다섯 가족도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남북 간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봉장에서 한 북측 가족이 김일성 표창을 꺼내 자랑하자 남측 지원 요원이 테이블 아래로 내리거나 표창 덮개를 닫을 것을 요구한 것. 이러자 북측 보장성원(진행요원)이 나서 “가족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인데, 가만히 뒤에 계시라”고 제지하기도 했다.
○ 文대통령 “남북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노력해야”
상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소식도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쟁 통에 황해도 연백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둔 채 피란길에 나섰던 김진수 씨(87)는 여동생이 사망해 조카 내외를 만났다. 그는 “금년 1월에 (여동생이) 갔다고 하데….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상봉 행사에 뽑히고도 건강 등을 이유로 금강산에 가지 못한 신청자가 4명이나 된다. 우리 측 전체 상봉 신청자의 평균 연령은 이미 81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 최우선 사항”이라며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기적인 상봉 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 화상상봉, 상시상봉,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며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 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 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 기자 / 금강산=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