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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공연땐 살수차 샤워… 녹화장 얼음팩-‘손풍기’ 필수

입력 | 2018-08-20 03:00:00

[컬처 까talk]폭염이 바꾼 문화계 풍속도
올 여름행사 ‘온열질환’ 경계령… 에어컨 빵빵 박물관 ‘박캉스’ 대인기
외면받던 실내 행사 관심 쏠려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까지 어질어질하더라고요. ‘더워서 못 견디겠다’며 중간에 빠져나간 사람들 때문에 무대 바로 앞에 빈자리가 생길 지경이었다니까요.”

지난달 30일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의 첫 내한 공연에 다녀온 대학생 우다인 씨(23·여)는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았는데, 2만 명이 빼곡히 들어찬 스탠딩 객석에 폭염 대비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 수십 명이 결국 탈진 증세를 겪어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 폭염이 바꿔놓은 여름 문화계 지형

기상관측 역사에도 남을 만큼 무더운 올해 여름. 야외로 나가길 주저할 정도로 폭염이 이어지자 여름 문화 축제나 행사들의 이모저모가 바뀌고 있다.

공연·축제업계에선 이제 여름 이벤트에서 ‘온열 질환’이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10∼12일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사흘 내내 살수차를 동원해 쉴 새 없이 객석에 물을 뿌렸다. 야외 행사장 곳곳에 대형 선풍기를 배치하고, 임시 컨테이너 박스에 에어컨을 설치한 ‘쿨 존’까지 운영했다. 펜타포트 관계자는 “앞으로 페스티벌 기간엔 ‘폭염’을 기본 전제로 천막 형태의 에어컨 존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의 대비책을 마련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공연 자체도 ‘시원함’을 콘셉트로 해야 인기를 끌었다. 객석으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콘서트를 즐기는 ‘싸이 흠뻑쇼’는 3∼5일 공연을 앞두고 예매 시작 15분 만에 60만 명이 몰렸다. 도심 한복판에는 얼음과 눈도 등장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여름 밤의 눈조각 전시회’는 하루에 2만 명이 찾을 정도였다.

제작 환경도 폭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현장에서 얼음주머니와 휴대용 선풍기 지급은 필수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PD는 “탈진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제작진을 위해 소금과 포도당도 구비해 뒀다”고 말했다. 지방 곳곳을 도는 KBS2 ‘1박2일’ 제작진은 3일부터 이틀간 예정돼 있던 야외 촬영을 취소했다.

○ ‘에어컨 빵빵’ 실내 행사의 역대급 인기

전국 박물관들은 ‘박캉스(박물관+바캉스)’를 즐기는 시민들로 폭발적인 관람객 증가를 기록했다. 박물관은 유물 보존을 위해 1년 내내 20∼24도의 온도를 유지하기에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김은지 씨(35·여)는 “야외로 나가기 부담스러워 실내 전시를 찾았다”며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박물관에 부쩍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은 여름철 사상 최고의 관람객 동원을 기록했다. 7월 15일∼8월 15일 17만6880명이 찾아와 지난해에 비해 무려 28%나 증가했다. 관계자는 “시원한 바다가 떠오르는 이름 덕도 톡톡히 본 것 같다”고 자평했다.

영화관 역시 폭염이 도움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폭염이 절정에 이른 8월 1∼15일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2049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1897만 명)에 비해 150만 명이 늘었다.

공연·전시계도 이번 폭염을 치르며 ‘인식의 전환’이 벌어졌다. 그간 야외로 떠나는 휴가철인 7, 8월엔 관객이 없어 대형 프로젝트는 피해 왔다. 하지만 치명적인 더위는 ‘실내’를 장점으로 바꿔놓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으로 한반도도 여름엔 폭염의 일상화가 예상돼 문화계 역시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시민들을 끌어들일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며 “업계에서도 ‘폭염 특수’를 겨냥한 문화 콘텐츠를 계속해서 선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운 easy@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