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문화부 기자
귀가까지 감안하면 확실히 부담스러운 시간대다. 그런데도 약속이나 한 듯 오후 8시를 고수하는 이유가 뭘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공연 시작 시간이 오후 7시 반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각하는 관객들이 골칫거리였다. 평일 저녁 ‘칼퇴근’을 하고 여유 있게 도착하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공연 진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도착할 시간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오후 8시로 늦춰졌단 설명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선 주로 월요일 공연을 쉬고 평일 낮 공연은 거의 운영하지 않는다. 찾는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티켓 가격이 최대 15만 원까지 하는 공연장의 주 관객은 소득이 있고 문화생활 욕구가 있는 성인 직장인들이다. 그런데 각종 회의와 주간 일정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가장 고단한 날이 월요일이니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다. 평일 낮 시간을 빼기는 더 어렵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일부러 월요일 공연을 시도한 곳도 있었지만 신통치 않았다”며 “평일 낮 공연 역시 연휴나 휴가철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접근하기 좋은 시간에 다양한 공연이 올라가야 관객층이 늘어나고 문화산업도 살아난다. 요즘 공연업계에도 ‘주 52시간 근무’ 시행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 공연산업 부흥으로 이어지려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수준 이상의 근로문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막 ‘정시 퇴근 준수’로 첫발을 떼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오후 7시 공연도 관객으로 가득 차는 서울의 풍경을 기대해 본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