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경제]
‘양돈 디자이너’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받아들고 따라간 이정대 이레농장 실장(31)의 돈사는 이런 생각을 깨버렸다. 돈사 안의 온도는 28도를 가리켰다. 돼지가 빽빽이 들어차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16㎡크기의 돈사 방 하나에는 돼지가 13~15마리씩 널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 실장은 “사람도 더운데 돼지라고 안 덥겠어요. 동물복지도 중요해요”라며 웃었다.
● 자비로 외국농장 30곳 찾은 청년
이 실장은 돼지농장에 정보통신기술(ICT) 양돈법을 도입한 젊은이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2016년 스마트 돈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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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양돈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에서 3년간 공부한 뒤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레농장에 들어갔다. 그가 보기에 농장엔 문제가 많았다. 특히 돼지 폐사율과 직결되는 환기장치 문제가 컸다. 미국과 독일, 일본 농장을 찾으며 환기장치를 공부했다. 그리곤 직접 돈사를 리모델링하면서 여러 환기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10~20%였던 폐사율이 30~50%로 오히려 늘었다.
지금의 돈사는 네덜란드 시스템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돈사의 온도, 환기, 분뇨 처리, 제습 등이 모두 자동으로 제어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입력 값을 넣고 수치를 체크한다. 자동화로 하루 실제 일하는 시간은 6시간이 채 안 된다.
그가 농장을 운영한 뒤로 돼지 두수는 1800마리에서 2800마리로 늘었다. 폐사율은 0.3% 로 한국 최저 수준이다. 어미돼지 한 마리당 연간 돼지 출하 마리수를 의미하는 MSY는 26.4두다. 국내평균이 17.9마리이고, 세계 최고수준인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각각 30.1마리, 28.4마리다. 이 실장은 “5년 안에 35마리로 만드는 게 목표에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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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처음부터 농부는 아니었다. 그는 런던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무역컨설턴트로 일했다. 무역회사를 차리기 위해 2013년에 영국에서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아버지의 합천 농장으로 내려와 일을 돕다가 계획을 바꿨다. ‘경험과 감(感)’에 의존하는 농사법에 기술과 체계적인 경영시스템을 접목하면 큰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재고, 대금 등 회계, 인력 관리였다. 그는 “단가를 확인하지 않고 비료를 사온다든가 재고가 충분한데도 또 자재를 사온다든가 돈이 술술 새는 구멍이 많아 관리 필요성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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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표가 농장 운영에 나서면서 생산량은 40% 가까이 증가했다. 시세 변동이 큰 작물이지만 연 매출액은 20억 원 내외를 오가며 안정적이다. 노 대표는 창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농업도 일종의 사업”이라며 “작물재배에 필요한 기술과 관리 능력, 방법 등 모든 걸 꼼꼼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주·합천=김준일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