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서 서핑 영화제 ‘그랑블루 페스티벌’ 개최한 영화감독 이현승
21일 오후 5시 강원 양양군 죽도해변에서 바다 환경보호를 위한 ‘서프보드 플래시몹’에 참가한 서퍼들이 보드를 들고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랑블루 페스티벌 제공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끌어 온 미장센 단편영화제를 내려놓은 이현승 영화감독(57)이 서핑에 푹 빠졌다. 그가 만든 서핑 영화제 ‘그랑블루 페스티벌’이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강원 양양군 죽도해변에서 열렸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21일 만난 이 감독은 구릿빛 피부로 모래사장을 누비고 있었다.
“서핑은 20년 전 하와이에서 처음 배웠습니다. 그 후 잊고 있다가 우연히 사진을 보고 2013년 양양에 왔어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서핑이 인생 같아 빠져들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죠.”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린 ‘그랑블루 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현승 감독. 수년 전부터 서핑에 빠진 이 감독의 영화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바다가 나온다. 양양=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먼저 인사하고 맥주도 함께 마시니 ‘영화감독이래’ 하며 조금씩 알아봤어요. 이곳 서퍼들이 도시락이나 커피를 내줘 지난해 첫 영화제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매일 아침 쓰레기를 줍는 ‘비치 클린’으로 시작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이곳 서핑 가게 상인들은 평소에도 아침마다 해변 청소를 한다. 파도를 선물하는 자연을 존중하는 의미다.
“2020년 올림픽에 서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서핑은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랑블루 페스티벌’을 찾은 배우 전도연(왼쪽 사진)과 이정재. 그랑블루 페스티벌 제공
19일부터 22일까지 강원 양양군 죽도해변에서 열린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바다 바로 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상영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21일에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밤샘 상영도 진행했다. 그랑블루 페스티벌 제공
감각적 표현에 능숙한 이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가 액션이나 스릴러에 쏠려 아쉽다고 털어놨다.
“최근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분노, 불안, 슬픔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회를 반영해 영화도 복수나 울분이 많았죠. 하지만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많은 관객이 찾았다고 하니 희망이 보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정착하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국내 최초 면 단위 제작사일 겁니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묻자 그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영상물을 주로 제작할 것이라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또 모르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이현승표 ‘죽도 서핑 다이어리’가 나올지도요. 하하.”
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