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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민긍호 후손’ 데니스 텐 사망, 고려인 카자흐스탄 강제이주 재조명

입력 | 2018-07-20 11:21:00

사진=중앙아시아로 끌려온 한인들의 첫 정착지인 우슈토베 마을 인근의 부슈토베 언덕.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숨진 사람들을 하나둘 묻으면서 무덤이 늘기 시작해 지금은 아예 한인 공동묘지처럼 바뀌었다. / 우슈토베=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진 피겨스케이팅 선수 테니스 텐(25·카자흐스탄)은 고려인 출신이다.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민긍호 선생(閔肯鎬·?∼1908)이 그의 외고조 할아버지. 데니스 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안타까운 과거도 재조명 받고 있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 카자흐스탄 등 구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를 지칭한다. 186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그 시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망명해 정착한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는 항일투쟁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은 1937년 극동에 사는 한국인들을 일본의 잠재적 협력자로 보고 탄압하기 시작한다. 스탈린은 그해 8월 21일 극동 국경에서 한국인을 카자흐와 우즈베키스탄으로 퇴거하기 위한 비밀 법령을 만들고 극동지역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당시 중앙아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한인들은 무려 17만2000명에 달한다.

사진=고려인 이동경로/동아일보DB


강제 이주 과정에서 고려인은 사망한 노인·어린이 시신을 잠시 머문 열차 역 근처에 서둘러 묻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허허벌판인 우슈토베 등지에 버려진 후 겨울을 나기 위해 토굴을 파는 등의 고통스런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고려인은 이듬해부터 콜호스(집단농장)에서 기록적인 생산실적을 올리는 근면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정받기 시작한다. 193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사회주의 노동영웅 2만2000명의 명단에 오른 한국인 206명이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스탈린 정권의 당시 강제 이주가 불법이었다는 공식적인 규정이 나온 건 1993년 4월.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약 10만7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사진=이주 초창기 고려인 마을 모습 / 우슈토베=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19일 괴한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데니스 텐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선수 이력에 ‘한국 민긍호 장군의 후손’이라고 표기하는 등 자신이 고려인 출신임을 당당히 드러내왔다.

데니스 텐의 외고조 할아버지인 민긍호 선생은 1907년 고종의 양위와 군대 해산 명령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킨 구한말의 의병장으로,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다. 민긍호 선생의 외손녀인 김 알렉산드라가 텐의 할머니다.

한편, 외신에 따르면 데니스 텐은 19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백미러를 훔치려는 2명의 남성과 다투다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경찰은 현재 용의자 2명을 쫓고 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