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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市판사 지원 박보영 전 대법관, 퇴직 법관 새 진로 열길

입력 | 2018-07-19 00:00:00


올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최근 전남 여수시 법원 판사로 근무할 수 있는지 법원행정처에 타진했다고 한다. 여수시 법원 판사는 소송가액 2000만 원 미만의 소액사건을 다루는 시·군 판사다. 지난해 원로법관제가 도입되면서 서울고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등 고위 법관 5명이 이미 시·군 법원에 내려가 소액사건 재판을 맡고 있다. 대법관 출신은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은퇴 법관의 새로운 선례가 될 수 있다.

대법관은 퇴임 후 2년간 개업이 금지된다. 그러나 2년 후에는 대부분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가거나 법률사무소를 열어 막대한 수임료를 챙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 출신만은 평생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대법관들이 먼저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선례를 보여서 퇴직 판사들의 모범이 되라는 요구에는 윤리적 정당성이 있다.

법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소송 당사자로부터 1심이 부실하다는 불만을 사 1심에서 종결되지 않는 사건이 많다는 것이다.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갓 벗어난 경륜이 적은 법관보다는 대법관이나 법원장을 지낸 고위 법관들이 1심, 그중에서도 서민들이 주로 다투는 소액사건을 맡는다면 소송 당사자들의 승복 가능성을 높여 사법 신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법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전관예우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평생법관제가 정착돼 퇴직해 옷을 벗고 나오는 판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원로법관제의 개선을 포함해 ‘한번 법관이면 평생 법관’이 되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한국 사법의 수치스러운 낙인인 전관예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