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 폐막뒤 자화자찬 회견
“나는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동맹들은 내가 긴 연설로 위기 국면을 조성한 후에야 국방비를 급속도로 늘리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들의 분담금은 로켓선처럼 올라갔고 더 올라갈 것”이라며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동의했다”고 말했다.
유럽 각국은 11일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압박에 나름대로 대비해 왔다. 회의 전 독일과 영국 국방장관 등은 “트럼프의 방위비 압박은 일리가 있다”며 자세를 낮췄다. 2024년까지 방위비 지출 의무인 국내총생산(GDP)의 2% 목표에 도달하기로 한 4년 전 합의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들며 나토 동맹국들을 당황케 했다. 그는 회원국들에 GDP의 2%가 아닌 4%로 방위비 지출을 두 배로 늘리라고 요구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작년에도 제기했던 내용”이라고 했지만 AFP통신은 “유럽 국가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정상회의 후 “나토는 안보를 구매할 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아니라 전략적인 목표와 공동의 가치로 뭉친 주권국가의 동맹”이라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정작 미국의 방위비 지출은 GDP 4%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GDP의 4.2%를 방위비로 쓴다고 밝혔지만 나토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 GDP의 3.5%를 쓸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를 마치며 “나는 나토를 믿는다. 나토에 대한 미국의 헌신은 매우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오히려 2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강하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나토 회원국들이 2024년 GDP의 2% 방위비 지출이라는 본래 목표를 구체적으로 더 진전시키기로 했다는 내용은 문서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얻어낸 것보다 자국 여론을 겨냥한 홍보에 다른 나라를 이용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동맹 간에 괜한 상호 불신만 커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나토 미국대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토 미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빨리 신뢰를 깎아 먹는 미국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며 “나토에 대한 계속된 공격에 동맹국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