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비행기 여행의 꽃’ 기내식 전쟁 막전막후
독일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기내식을 담은 카트가 실리고 있다(왼쪽 사진). 한 승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밥 없는 기내식’ 사진. 주식 자리에 30달러짜리 바우처가 놓여 있다. 동아일보DB·SNS 캡처
○ 승객 앞에 오기 전 기내식에 담긴 ‘속도전과 과학’
대한항공에 기내식을 싣는 업체인 한국공항에서 일했던 홍모 씨(34)는 “늦어도 1시간 안에 일반, 영유아, 채식,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 할랄(이슬람 율법에 따른 음식) 등 필요한 기내식을 실어야 한다”며 “첫 고객 탑승 전까지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외국 항공사의 경우 깐깐한 승무원을 만나면 1시간을 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내식은 식재료 반입, 조리, 디시 업(담기), 플레이팅(식판 음식 배열), 탑재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과정마다 일반 음식점 요리와는 다른 요구 조건이 많다.
먼저 조리 과정은 과학에 가깝다. 무게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햄 한 쪽도 똑같은 모양으로 잘라야 한다. 조리는 식사가 이뤄지는 기내 환경에 맞춰서 이뤄져야 한다. 기압이 낮은 상공에서는 맛에 둔감해져 소금과 설탕을 30% 정도 더 넣거나 낮은 기압으로 샴페인 기포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보관 온도를 낮춰야 한다. 영유아, 코셔, 할랄, 베지테리언, 건강식 등 승객의 요구를 탑승 전에 미리 받아 맞춰 제공하기도 한다. 대한항공이 준비하는 기내식 종류만 120여 가지에 이른다.
보관도 까다롭다. 기내식은 조리 후 2∼12시간 뒤 승객에게 전달된다. 조리 후 하루가 지난 기내식은 폐기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리 후 맛을 유지하고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섭씨 5도 이하로 식힌 뒤 기내 주방인 갤리에 보관했다가 이륙 후 오븐에 데워 서비스한다”고 말했다. 기내식은 출발지에서 조리하거나 재료를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국 사정에 따라 버터나 과일 종류가 달라질 수 있지만 플레이팅, 무게 등은 같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내식 수량은 탑승객 수보다 약간 더 준비하며 쇠고기 수요가 많아 쇠고기와 닭고기 비중은 8 대 4 정도”라고 말했다. 남은 음식은 폐기하는 게 원칙이지만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식을 유료로 제공하는 저비용항공사(LCC)는 대부분 미리 주문받은 기내식만 비행기에 싣는다. 그 대신 라면, 샌드위치, 컵밥 등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전 세계 기내식 시장은 지난해 기준 17조5000억 원 규모다. 마진이 10∼20%로 급유나 정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코노미석 기내식은 안정화된 반면 비즈니스석과 1등석 승객용 기내식 메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화재와 안일한 대처가 초래한 기내식 대란
기내식은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공급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서 긴급히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기내식 업체에 주문을 한다고 해도 기존 거래처에 보내야 할 물량 때문에 추가 생산이 여의치 않다. 대한항공이 올해 3월 GGK 공장 화재로 기내식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아시아나항공의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GGK 공장 화재 이후 LSG에 다시 주문을 했으면 ‘기내식 대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LSG 직원 900명 가운데 750명이 GGK로 이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LSG가 아시아나항공 물량을 공급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설 snow@donga.com·송진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