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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길진균]부엉이로 바뀐 담쟁이

입력 | 2018-07-05 03:00:00


‘저것은 벽…’으로 시작하는 시 ‘담쟁이’.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작품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 발족한 경선캠프 이름인 ‘담쟁이 포럼’은 이 시에서 따왔다. 문 대통령은 주요 모임에서 담쟁이의 소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이 시를 곧잘 낭송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의 ‘부엉이 모임’이 화제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담쟁이’란 이름 아래 모이곤 했던 친문 인사들이 2016년 총선 이후 ‘부엉이’로 이름을 바꾸고 이제는 달(moon·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은밀히 만나고 있다. ‘부엉이’를 작명한 사람 역시 도 장관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친위조직’을 연상케 하는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든 모습은 불과 2년 전 친박(親朴) 원박(原朴) 신박(新朴) 하며 열을 올리다 ‘진박(眞朴) 감별사’까지 등장한 옛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정치는 ‘우상과 팬덤’의 시대가 됐다. 노빠, 문빠, 박빠…. 정치적 팬덤은 자신들의 리더에 대한 과잉 숭배와 경쟁자에 대한 무한 적개심으로 표출되곤 한다. 숭배와 증오는 동전의 양면이다. 가뜩이나 친문 진영의 폐쇄성과 독단에 대한 우려가 정치권에 팽배하다. 부엉이 모임 멤버들은 ‘친목 모임’이라고 항변하지만 특정 계파의 인사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모임으로 비칠 뿐이다.

▷6·13지방선거에서 PK(부산경남)를 휩쓴 친문 진영의 기세가 드높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 확보를 위해 당권을 노리고 있다. 성사된다면 말 그대로 ‘친문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담쟁이 캠프는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함께 오르자”는 시심(詩心)을 담았다. 소박한 담쟁이가 어느덧 큰 눈을 부릅뜨고 밤에 먹이를 찾는 부엉이로 바뀌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도 부엉이 명칭을 부정적으로 본다. 친문 전성시대가 도를 넘으면 완장 찬 실세들의 전횡으로 갈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