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상징 법원행정처, 조직이기주의에 되레 독립 해쳐 “법관은 법원 자체가 아니라 법원 존재이유인 正義를 지켜야” 檢,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되 사법권 독립 흔들려선 안 될 것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수사의 운명은 작명(作名)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이 사건의 보도를 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부터 ‘사법 농단’ ‘재판 거래 의혹’ 등 다양한 표현이 쓰인다. 핵심적인 수사 대상은 상고법원 설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다.
사법권이란 국민의 삶에서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법에 따라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국가 작용을 뜻한다. 즉 재판에 관한 권한이다. 우리 헌법상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그 독립은 엄격하게 보장된다.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위협받게 되므로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독립을 보장받는 것이다. 하지만 법관 인사와 법원의 조직, 예산 등 사법에 관한 행정 사무인 사법행정권은 고유한 사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 권한을 국회, 대통령, 법원 등 어디서 행사할 것인가는 나라마다 다양한 선택이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1938년 5월 사법권 독립을 지향하는 젊은 판사들이 ‘사쓰키(皐月)회’라는 연구모임을 결성했다. 그 연구의 결론은 세 가지였다. 첫째, 행정관인 사법대신이 재판소를 감독하는 것은 사법권의 독립에 반(反)한다. 둘째, 판사의 천직은 재판하고 판결서를 쓰는 것이므로 판사는 재판에 전념해야 한다. 셋째, 사법성에서 사법행정을 하던 사람이 재판소에서 재판에 전념한 판사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재판소 요직에 취임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쓰키회의 염원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결실을 맺었다. 미군정 시기에 법원이 인사와 예산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내용이 담긴 재판소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미군정 때부터 사법행정권이 대법원에 넘겨졌고 법원행정처가 법관 인사와 법원 조직 등을 전담해 왔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사법행정권과 관련돼 있다. 폭증하는 상고 사건을 소수의 대법원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상고법원을 설치해서 다수의 상고 사건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신속한 재판’을 추구하고자 했다.
신속한 재판은 국민적 요구다. 하지만 법원의 조직 변경은 고유한 사법 영역이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정부나 국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청와대나 국회에 협조를 부탁하고, 약자의 입장으로 로비하는 과정에서 사법의 신뢰를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은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헌법 가치다. 검찰의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하면 된다. 법원의 제도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법권의 독립이 위협받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처 문건은 대법원장을 ‘CJ(Chief Justice)’로 호칭했다. 법관을 단순한 판사(judge)가 아닌 살아 있는 정의(justice)로 인식한 것이다. 그 독립불기(獨立不羈)의 정신이 굳건하게 지켜지면 좋겠다. 서울중앙지법 단독 판사들은 “법관은 법원 조직 자체가 아니라 법원의 존재 이유인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 “사법행정 제도가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