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자기업들 혹독한 구조조정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렸던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 체험 전시장. 아이가 아이보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이번 아이보는 12년 만에 나온 소니의 신작 로봇이다. 1999년 첫 번째 아이보 공개 당시 소니는 “혁신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 로봇을 15만 대나 팔았다. 이후 아이보는 소니의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2006년 아이보 생산이 중단됐고 수리 서비스인 ‘아이보 클리닉’까지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소비자들은 아이보 장례식까지 치르며 소니의 침체를 슬퍼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단종 12년 만에 부활한 강아지 로봇에 대해 “아이보의 부활이자 소니의 부활”이라고 전했다.
○ ‘스테(捨て·버리기)’ 경영으로 위기 극복
파나소닉이 만든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의 스마트타운.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다. 후지사와=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소니의 추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직원 1만6000명 이상을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발표된 실적에서 소니는 14년 만에 영업이익이 적자(2278억 엔)가 나는 등 위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8분기 연속 적자, 신용등급 강등 등 소니로서는 수치스러운 뉴스들이 이어졌다.
2012년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당시 사장 취임 후 혹독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빌딩과 보유주식 등의 자산을 매각하고 컴퓨터 등 기존의 소니를 대표하던 사업 분야를 정리했다. 그 대신 2015년 공모 증자로 만든 4000억 엔을 자율 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 사업에 투자했다. 소니는 최근 이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45%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분야는 최근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시장 확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니의 향후 먹거리에 대해 요시다 사장은 IoT, 로봇 사업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3년간 최대 1조 엔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자율 주행차에 필요한 센서 개발 등 ‘모빌리티’ 분야에도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시장에서 맹위를 떨쳤던 일본 전자회사들이 2000년대 들어 경영 위기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엔화 강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하락을 경영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기존 사업에 함몰돼 선제적인 투자를 하지 못한 점 등 일본 기업에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전자회사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는 이른바 ‘스테 경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파나소닉에 따르면 2012년 13.7%이던 자동차 관련 사업 비중은 지난해 21.3%로 늘었다. 같은 기간 TV 제조 부문은 7.2%에서 4.2%로 줄었다. 지난해 파나소닉의 영업이익은 3805억 엔(약 3조7257억 원)으로 쓰가 사장 취임 후 ‘V자 곡선’을 그리며 위기에서 탈출 중이다. 쓰가 사장은 아사히신문의 시사 주간지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업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뒤늦게 ‘버리는’ 도시바
사업 중심축을 기기 설비 판매에서 AI와 빅데이터 해석 등 첨단기술 활용 컨설팅 서비스로 재편한 히타치 같은 기업이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반면 히타치와 같은 종합 전자회사인 도시바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도시바의 사업 매각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백색가전을 시작으로 TV, 반도체에 이어 PC 부문까지 이르렀다. 도시바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사업 손실이 7125억 엔(약 6조9644억 원)이나 됐고 회계부정이 잇달아 적발되면서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원전사업을 주도해 온 시가 시게노리(志賀重範) 전 도시바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일본 경제 전문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는 도시바의 몰락에 대해 “사업 결정 과정이 충분한 논의 없이 파벌, 상명하복으로 이뤄졌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현재 고강도 구조조정 중인 도시바에 대해 “향후 엘리베이터 등의 인프라나 에너지 사업 등 기업 간 거래(B2B) 사업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후지사와=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