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니, 15년 전 철없던 도전이 생각난다. 그 시절 나는 라디오 작가를 그만두고 할 일 없는 백수로 살았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밥만 먹으면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리기를 했다. 그때 나에게 마라톤을 알려준 사람은 DJ 박철이다.
“마라톤은 빨리 가는 것보다 끝까지 완주하는 게 중요해. 무턱대고 뛰지 말고 뛰는 방법을 배워야 돼. 일단 발뒤꿈치부터 살살 디디면서 발가락 쪽이 나중에 닿게 뛰어야 무릎에 무리가 안 가고 오래 달릴 수 있어!”
어느 날 철이 형이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 시절 백수였기 때문에 2000만 원이라는 상금이 간절했다. 처음 10km 기록을 재보니 1시간03분! 그날부터 술도 끊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한 달 만에 50분 안쪽으로 들어왔고 49분50초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축하한다. 넌 달리기를 위해서 타고난 몸이야. 괌에 가면 형도 코치로 따라갈게!”
마라톤을 하면서 내 근육이 ‘속근’이 아니라 ‘지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속근이 발달된 사람들은 단거리를 잘하고, 지근이 발달한 사람은 장거리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잘한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44분53초라는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던 어느 날,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리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외로운 늑대’라는 코치님을 만나게 됐다. 그 코치님은 황영조 선수와 달리기 훈련을 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괌에서 열리는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려고 합니다.”
“거기는 세계 대회라서 쉽지 않은데….”
“일단 30분 안으로 들어오는 게 목표고! 28분 안에 들어오면 우승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8분! 아…, 열심히 해봐요. 황영조 선수가 29분이 기록이니까! 재국 씨가 28분에 들어오면 우리나라 최고 기록이에요!”
“형! 황영조 기록이 29분이라는데 어떻게 28분에 뛰어요?”
“야! 국제 마라톤 대횐데, 거기서 우승하기가 쉽냐!!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봐!”
난 맥이 풀렸고, 그날 이후 숨도 안 쉬고 뛰었지만 내 최고 기록인 44분53초에서 1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 나의 무모했던 도전이여!!!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