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20주년 천덕산서 참례식… 이정희 교령, 선구적 생명관 기려
“가정에 비유하면 수운 대신사님(최제우)은 아버지, 해월 최시형 선생은 기틀을 잡은 어머니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해월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천도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경기 여주시 금사면 천덕산에 있는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1827∼1898)의 묘소에서 2일 만난 천도교 최고 지도자 이정희 교령(사진)의 말이다. 이날은 해월 순도(殉道·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 120주년 기념일로, 묘소 참례식에는 이 교령과 박남수 전 교령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2일 해월 최시형의 순도 120주년 기념식에는 이정희 천도교 교령을 포함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1898년 한성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해월의 시신은 서울 송파를 거쳐 당시 인적이 없던 경기 여주시 천덕산 기슭에 안장됐다. 여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해월의 일생은 언제 위태로움을 맞을지 모르는 삶이었다. 동학이 불법화된 가운데 그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무려 36년간 삼남(三南) 일대를 돌며 도피 생활을 했다. 해월의 족적이 있는 장소만 200여 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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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은 도피 중에도 교세를 확장해 동학은 1890년대에는 경상·전라·충청 삼남 지방을 거의 포괄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 사이 교조신원운동에 이어 1894년 동학혁명이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자 동학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해월은 1898년 4월 5일 원주 송골에서 관헌에게 체포된 뒤 6월 2일 한성(경성)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도한다. 시신은 형장 뒤뜰에 사흘간 방치된 뒤 광희문 밖에 묻혔다. 동학교도들이 시신을 찾아 송파의 산에 옮겼다 다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덕산 기슭에 안장했다.
이 교령은 “해월 선생의 사상은 선구적인 생명관”이라며 “경북 경주의 생가터를 복원하고 해월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여주·영월=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