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집옥재 답도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에는 무려 68마리의 동물상이 웅장하게 감싸고 있다. 검소함과 절제라는 유교이념이 깃든 조선 시대의 이전 왕실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395년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때와는 달리 1867년 고종이 즉위한 이후 중건되면서 이처럼 다양한 동물이 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는 궁궐 내 왕(황제)만이 지날 수 있는 계단 길인 답도(踏道)에 배치된 동물들을 연구했다. 근정전 뿐 아니라 고종의 재위 기간 지어진 경복궁의 집옥재, 경운궁(덕수궁) 중화전, 원구단의 답도에 배치된 동물상에는 ‘독립’ ‘근대화’ ‘법치’라는 독특한 코드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경복궁 근정전 답도 중앙 봉황 부조
근대 왕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동물 문양은 경복궁 집옥재 답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맞물리는 두 마리의 용이다. 용은 왕(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동물.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근정전 등의 답도 중앙에는 모두 봉황만이 배치됐지만, 집옥재에서 처음으로 용을 전면에 내세웠다. 1881년 창덕궁 경내에 지어진 후 1891년 현재의 경복궁 자리로 옮겨진 집옥재는 고종의 개인서재이자 각국 공사들을 접견한 집무실. 답도는 원래 법전이나 법문에만 설치됐지만 유일한 예외가 집옥재다.
경복궁 집옥재 용전신 환조 취두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구단을 건설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했다. 황제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공간인 원구단에는 그에 어울리는 상징물들이 필요했다. 원구단과 황궁우 사이에 놓인 삼문(三門)의 답도에 쌍룡(雙龍)과 해치 두 종류의 동물만을 배치한 것. 쌍룡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물이고, 해치는 시비곡직을 가리며 불의를 보면 뿔로 받아 물리친다는 법과 정의의 화신이다. 전제황권과 근대적인 법치주의 국가를 지향한 고종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1901년 지어진 덕수궁 중화전의 답도에도 쌍룡과 해치 동물상 10개가 나타난다.
원구단 삼문 해치전신 좌상 배치
김 교수는 “경복궁 근정전 답도의 동물상에선 조선왕조의 영광이, 집옥재로부터는 고종의 강력한 독립과 근대화의 의지가, 경운궁과 원구단에선 왕조와 제국이 교차하는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