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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해외 투기자본 습격… ‘경영권 방패’ 입법 서둘러야

입력 | 2018-05-18 03:00:00

[기업하기 힘겨운 한국]‘관련법 논의’ 수년째 제자리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습이 3년 만에 재연되면서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은 ‘오너 일가에 대한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와 정치권의 반대 속에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 주주권 강화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과 맞물려 이 틈을 노린 해외 자본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경영권 방패’ 논의 제자리걸음

17일 금융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국내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같은 경영권 위협 시도가 발생했을 때 주주총회 소집을 통해 자산 매각이나 재무구조 개편을 하거나 ‘자기주식 취득’ ‘황금낙하산’ 같은 방어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재무구조가 악화될 부담이 있어 현재로선 기업이 자사주를 늘려 지배력을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공격해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먹튀’ 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을 공격해 9000억 원대의 차익을 남겼고 2006년엔 칼 아이칸이 KT&G 지분을 매입한 뒤 경영 개입을 시도하다 1500억 원대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특히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며 삼성 측과 맞선 데 이어 지난달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며 또다시 ‘주총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자본의 공습이 발생할 때마다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주식’ ‘황금주’처럼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중 실제 법으로 적용된 건 전혀 없다.

경영권 위협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하는 포이즌필(신주 인수 선택권)은 2009년 이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까지 됐다가 무산됐다. 대주주에 대한 특혜로 바라보는 여론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원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발의된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20건) 가운데 경영권 제한 조치를 담은 개정안은 18건인 반면 경영권 보호 장치에 초점을 둔 발의안은 2건에 불과하다.

○ ‘엘리엇 방지법’ 도입 시급

재계와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엘리엇 방지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포이즌필과 더불어 효과적인 방어 장치로 ‘차등의결권 주식’이 꼽힌다. ‘1주 1표’가 아니라 대주주나 경영진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나 페이스북 등은 창업자들이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로선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방어할 수밖에 없는데 굉장히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며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은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16일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고 대주주를 견제하는 ‘경제민주화’ 상법 개정안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기업 규제가 2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재벌 순환출자 문제 등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이에 발맞춰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총수의 사익 편취나 불법적 기업 활동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내 실정에 맞게 방어 장치를 유연하게 도입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min@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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