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이사
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이베이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홍윤희 이사. “딸 지민이는 장애인이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 내 보물”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딸은 태어나자마자 척추암 판정을 받았다. 14번의 항암 치료를 견뎠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엄마는 좌절하지 않았고 내 힘으로 딸 앞에 놓인 혹독한 세상을 조금씩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2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부문 이사(45)는 회사 안팎에서 사회공헌 활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딸은 나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줬다”며 “그 눈을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지난달 말 자사의 오픈마켓 ‘옥션’에 발달장애인 전용 코너를 열었다. 홍 이사가 이끄는 사회공헌팀의 새 사업으로 그가 2016년 오픈마켓 최초로 만든 지체장애인 전용 쇼핑몰 ‘케어플러스’를 확대한 것이다.
홍 이사와 이베이코리아는 장애인이 판매하는 물건을 온라인몰에 입점 시켜 자립을 돕는 활동을 2년째 해오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기 위한 진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홍 이사를 저돌적인 활동가로 만든 힘의 원천은 단연 딸 지민이다. 그가 2016년부터 만들고 있는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도 휠체어를 탄 딸이 세상을 마음껏 누빌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딸과 함께 복잡한 환승역에서 내렸어요.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이 나 있었어요. 역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그 층은 우리 호선 담당이 아니니 다른 환승 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며 서로 떠넘기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났죠.”
그날 이후 홍 이사는 딸과 함께 휠체어로 서울 곳곳을 다니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장애인들의 이동이 얼마나 불편한지 동영상을 보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하나둘 모였다. 홍 이사는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뜻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시민 자원봉사자가 직접 지하철역 등에서 휠체어를 타보며 지도 정보를 수집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지금까지 총 33개역 58개 구간의 환승지도가 만들어졌고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한테는 ‘우리 엄마가 이런 일을 한다’며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 지민이는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