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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벤트경기 웃음꽃 피었는데 다시 싸울 순 없었다”

입력 | 2018-05-04 03:00:00

현장에서 전하는 ‘탁구 단일팀’ 과정





“가장 먼저 선수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선수들의 의견이 첫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단 한 명의 선수라도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모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나섰습니다.”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도중 깜짝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킨 주역은 탁구 스타 출신인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다. 유 위원은 2일(현지 시간) 튈뢰산드 호텔에서 열린 ITTF 재단 창립 기념식에서 남북한이 시범 경기를 치를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라 남북 선수들은 ‘하나의 한국, 하나의 테이블’이라는 문구 아래 작은 모형 탁구대에서 미니 탁구 경기를 했다.

시범 경기를 치른 남북 선수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곧바로 8강전에서 맞대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유 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조금 전까지 하나였는데 다시 싸워야 하는 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국 대표팀과 북한 대표팀, ITTF가 모두 서로에게 좋은 걸 다시 한번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우리 선수들이 모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나섰다. 단체전이니까 너무 좋다며 8강에서 서로 싸울 필요 없이 함께 4강을 가는 거라서 모두 환영했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북한 관계자들은 평소 경기장에서 많이 봐 왔던 분들이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님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예전 같은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만난 순간부터 서로 반가워했고, 이번 일을 추진하는 데도 말이 잘 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탁구 역사상 가장 감격적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27년 전 사상 첫 남북 단일팀 주역이었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도 있었다. 2020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위원단으로 참가한 현 감독은 “단일팀이 구성되려면 8강 팀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했고, 우리도 대한체육회 통일부 측 등에 질의해서 답변을 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 쪽 결정이 난 것이 현지 시간 3일 오전 5시(한국 시간 낮 12시)였고 북한 쪽 최종 결정이 난 것이 현지 시간 오전 8시였다. 이때부터 단일팀 유니폼을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나서되 시상식에는 태극기와 인공기를 한 번씩 게양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다. 게양 순서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북한의 리분희와 출전한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현 감독은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 가슴이 뭉클했다”며 “제가 볼 땐 남북한 모두가 탁구 단일팀에 대한 기억을 좋게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단일팀 성사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두 팀의 경기력이 좋다. 선수들은 들뜬 마음을 자제하고 경기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남북이 합세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팀의 경우는 북한이 예선 탈락해 단일팀을 구성할 기회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탁구 남북 단일팀 구성이 추진되고 있어 조만간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을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했다.

한국팀 주장 서효원은 “단일팀의 주인공이 돼 영광스럽다. 다 같이 힘을 합해 4강전에서 꼭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김송이는 “1991년 단일팀이 구성됐을 때 선배들이 부러웠다”며 “막상 내가 단일팀에 합류하니 긍지도 생기고 가슴이 부풀었다”고 전했다.

한국은 D조 1위로 8강에 직행했고, 북한은 C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뒤 강호 러시아를 꺾고 8강에 합류했다. 안재형 한국팀 감독은 “단일팀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청일 북한탁구협회 국제부장 또한 “(단일팀은) 좋은 구상”이라고 말했다. ITTF는 이번 대회 남북 단일팀 입상자 9명 모두에게 메달을 줄 계획이다.
 
이헌재 uni@donga.com·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