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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원의 봉주르 에콜]〈2〉오후 6시까지 돌봐주는 프랑스 학교

입력 | 2018-05-04 03:00:00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실내 하키요!” “요리하고 싶어요!” “저는 멀티스포츠요!”

수요일 오후. 프랑스 학교의 수업은 오전에 끝난다. 그런데 ‘여가활동센터(Centre de Loisir)’에 등록한 학생들은 점심 급식을 마친 후 교내 체육관에 모인다. 교사는 퇴근했지만 ‘사회문화 지도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활동을 고르게 한다. 체스와 댄스, 유도와 축구, 요리, 마임, 인형극 놀이…. 지도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놀이’를 한 후, 자습실에서 숙제를 봐주면서 오후 6시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지도사는 프랑스말로 아니마퇴르(animateur)라고 불린다. ‘생명력, 활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도사 1명이 학생 8∼10명을 맡는데, 모두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 내 아이는 지도사들을 선생님이 아니라 ‘개그맨’이라고 불렀다. 17세 이상의 젊은이들은 지자체의 지원 아래 사회문화 지도사 양성 과정을 밟아 자격증을 딸 수 있는데, 청년들에겐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자 좋은 일자리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아이들은 오전 8시까지 등교한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아빠 손을 잡고 등교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정규 수업은 오후 3∼4시쯤 끝나지만 원하는 학생은 오후 6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사회문화 지도사들이 미술, 체육 등 다양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같이 놀아주고 학교 숙제도 도와주면서 오후 6시까지 돌봐준다. 그 때문에 맞벌이 부부들이 안심하고 오후 늦게까지 아이를 학교에 맡길 수가 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초등학교 수업이 너무 빨리 끝난다. 오후 2시쯤에는 아이가 하교하는데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돌볼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승합차를 타고 ‘학원 뺑뺑이’를 한다. 최근 정부가 ‘초등 돌봄교실’을 대폭 확대한다고 발표했지만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한다.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자습만 시키기 때문에 우두커니 방치돼 있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을 둔 직장맘 후배는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는데 아이가 안 가겠다고 울어서 결국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의 돌봄교실과 비슷한 프랑스의 ‘여가활동센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시작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 늘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전업주부 자녀들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소득에 따라 수업료가 차등 적용되고, 저소득층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경제적 부담도 매우 적다.

‘여가활동센터’는 방학 때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파리 시내와 근교의 미술관, 박물관, 식물원, 공원, 과학관 등을 견학하며 야외 수업을 많이 한다. 승마, 스키, 음악 캠프도 열린다. 내 아이는 거의 무료로 ‘카누’를 배웠던 것을 지금도 멋진 방학 추억으로 자랑하곤 한다.

프랑스어로 방학이란 뜻의 ‘바캉스’는 ‘빈자리’에서 유래된 말이다. 방과후와 방학 때의 ‘빈자리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전문가의 보호 아래 놀면서 뭔가 배우고, 부모는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그 빈자리들을 즐거운 교육활동들로 채워 준다면…. 우리 아이들도 더 이상 학원들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