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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찬희]통일을 향한 디테일은 법률이다

입력 | 2018-04-30 03:00:00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을 공동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27일 지구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반도 비핵화, 연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등 봄날 꿈같은 선언이 쏟아져 나왔다. 역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번 ‘4·27 판문점 선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론이 없는 ‘위장 평화 쇼’라는 것이다.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이번 발표와 거의 유사한 한반도 완전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등을 약속했었다. 심지어 10년 전에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까지 폭파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제적 원조만 받고 파국을 만들었다.

북한은 정말 ‘양치기 소년’일까? 필자는 북한법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가 담겨 있는 선언문을 그대로 내부 언론에 보도하는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최근 중국 시진핑이 시도한, 경제는 풀어주면서 정치권력은 강화하는 방식을 지켜봤다. 이러한 대외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부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개발 등 지나친 군사력 강화는 인민들의 궁핍과 이로 인한 체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장성택을 비롯한 정적은 제거했다. 체제 유지에 가장 위협적인 변수는 고난의 행군 시절과 같은 경제난이다. 김정은으로서도 경제 발전을 통한 체제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평화협상에 나설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북한의 일정한 경제 성장은 통일 비용 감소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헌법에서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이상 대화와 소통을 통한 현재의 접근 방식이 바람직하다. 냉전시대의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시대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만 시도하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 북한과의 지속적인 접촉 시도는 평화통일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가장 최근에 통일을 이룬 독일과 예멘, 두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평화적 방식을 선택한 독일은 통일 이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거듭하며 유럽 최강국으로 성장했다. 무력에 의하여 통일된 예멘은 아직까지도 지역과 계층 간 갈등과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방식의 통일이 바람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폭넓게 소통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어떠한 체제의 그물로도 자유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동독은 주민투표를 통해 서독에 흡수되는 길을 선택했다. 남북 교류를 거치며 우리도 이런 방식의 민족 통일을 이룰지도 모른다.

이번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남북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교류에 부수하여 수많은 계약과 지침이 만들어질 것이 예상된다. 경험적으로 교류에는 필연코 분쟁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쟁을 사전 또는 사후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직 완전한 정치체제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법률을 만들고 계약을 검토하는 작업에 정부나 공공기관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치적 부담 없이 법률의 통합작업을 위해서 북한과 접촉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체는 변호사회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17년부터 북한법을 연구하고 통일법을 마련하기 위해 변호사 중에서도 북한전문가들을 선발하여 통일법제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북한법에 대한 자료 수집이 용이하지 않아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문점 선언을 통하여 북한법제와 관련된 자료의 수집, 정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통일시대에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적합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전 단계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북한변호사회와의 교류를 제안하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기대한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