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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권력, 이기려면 져라

입력 | 2018-04-16 03:00:00

朴도 당선 직후 “화해와 대탕평”… 文, ‘통합 대통령’ 약속 실천하나
權力실패 악순환 윤활유는 오만… 인사는 韓國사회에 보내는 신호
시한부 권력, 큰 게임 이기려면 작은 싸움 져주고 다른 편 포용을




박제균 논설실장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

짐작했겠지만, 대통령 당선 인사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19일 대선 직후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 국정운영을 해나가겠다”며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특히 “모든 지역과 성별과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겠다”며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돌아보면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은 화해와 대탕평책을 펴지도,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특히 대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은 아스라한 몰락…. 그렇다고 그가 당선 직후에조차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권력의 치명적인 매혹에 홀려 초심(初心)을 잃어버린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9일 당선된 뒤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를 보자. ‘정의로운 나라’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 ‘통합의 나라’다. “내일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당선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과연 문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가. 지지율만 믿고 가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누구나 패배한 쪽, 지지 안 한 국민들을 보듬겠다며 통합과 상생을 되뇐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게 우리의 대통령사(史)다.

임기 초반 적폐청산이 됐든, 국가혁신이 됐든 개혁의 바람은 유독 전 정권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쪽에 차갑게 불어닥친다. 집권세력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권력기관의 충성경쟁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는 한창 일해야 할 임기 중반에 소극적 저항과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불러온다. 그러다 임기 후반에는 미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굴러가지 않는 사태로 이어진다. 이것이 한국의 권력이 맞는 악순환의 함정이다.

이런 악순환의 윤활유가 바로 권력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오만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언제나 옳다’는 집단적 사고에 빠진 권력은 때론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으로 착각한다. 권력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뀌면 인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들도 어느 정도는 용인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감이 안 되는 사람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권력 주변에선 상식적인 경질 요구조차 기싸움으로 인식하고 ‘밀리면 안 된다.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고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심각하게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 전반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자격 없는 인물을 끝까지 밀고 가면 정부와 관변(官邊)에서는 인사 원칙이 무력화되고, 다른 편에서는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공분(公憤)을 응축시킨다. 한두 사람 지키려다 결국 권력의 정당성을 허물어뜨린다. 이제까지 권력의 실패는 대체로 인사의 실패였다.

비단 인사뿐이 아니다. 잘못된 외교안보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민심을 제때 읽고, 그때그때 고쳐 나간다면 기싸움에서 밀리기는커녕 권력의 기반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권력은 주변에 성을 쌓는 것보다 소통의 강을 뚫어야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역대 권력은 몇몇 인사나 정책 같은 전투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다 결국 큰 게임에서 졌다.

한국의 권력은 5년, 아니 임기 말 레임덕을 제외하면 3년 반 정도의 시한부 권력이라는 태생적 한계까지 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기 쉬운 게임이다. 이기려면 작은 싸움은 져주고 다른 편까지 포용하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자주 권력자마저 해치는 권력이라는 괴물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걸 못해 비운(悲運)을 맞은 두 분이 지금 감옥에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